800번 탈락한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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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Begin Again’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 <어벤져스(The Avengers)>에서 헐크 역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배우, 앞에도 썼듯이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의 주인공인 배우, 바로 마크 러팔로(Mark Ruffalo)이다.


그는 오디션에서 무려 800번이나 탈락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미래를 향한 뜨거운 성공의 이미지보다는 오늘 떨어진 나, 내일 떨어질 나의 모습만 가득했을 것이다.


뚜렷한 개성 없는 얼굴, 배우로 탄탄대로를 달리기에는 흐릿한 인상을 이유로 수많은 영화제작사들과 에이전시들은 그를 합격자 명단에 올려주지 않았다. 10년 넘게 이어진 바텐더와 요리사 생활, 페인트공 일을 전전하며 그는 오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실낱같은 기대감과 희망을 안고서 오디션을 보고 또 보고 다녔다.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가 다녔던 스텔라 애들러 예술학교(Stella Adler Studio of Acting)를 졸업해 기본기가 탄탄했지만, 고생과 실패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은 때가 되었다고 여겼을 때 기회를 주는 것인가. 영화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의 작가이자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가로 유명한 케네스 로너건(Kenneth Lonergan)의 눈에 띄어 연극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청춘(This is our youth)>에 출연했고 이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러팔로는 루실 로텔 어워드(Lucille Lortel Awards)에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그의 삶은 갑작스런 병마로 멈춰버리고 만다.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감독이 그를 영화 <싸인(Signs)>에 캐스팅했지만 뇌종양 진단을 받은 러팔로는 촬영에 임할 수 없었다. 10시간의 수술, 10개월의 재활치료. 수술 후 확인되었던 부분 안면마비는 극복되었으나 왼쪽 청력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2004년 복귀하여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고, 2010년에는 영화 <미라클맨(Sympathy For Delicious)>의 감독까지 맡아 선댄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진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와 <비긴 어게인>까지. 지금부터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탄탄대로와 같은 그의 성공 스토리만 무한하게 펼쳐져 나간다.




후회는 없다


마크 러팔로는 정말 좋아하는 배우이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에서 보여준 연기를 본 후로 그때부터 팬이 되었다. 그의 굴곡졌던 삶은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눈빛 연기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는 한 우물을 팠고, 파다가 파다가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황금 지하수를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많이 파 내려가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선택을 결코 비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자신이 내린 결정이니까.


하지만 아쉬움은 크다. 특히나 이런 스토리를 들을 때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는 정말 저렇게까지 숱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면서 장밋빛 성공을 꿈꿀 수 있을까? 나는 하다가 하다가 나대로 지쳤던 것이다. 800번까지는 아니지만 수십 번의 오디션을 보았다. 어떨 때는 꽤 잘한 거 같은데 왜 떨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는 괜히 용심이 나서 ‘분명 내정된 사람이 있을 거야. 이 오디션은 그냥 형식적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폭삭 망해버린 오디션도 있었다. 변명의 여지도, 나를 토닥거릴 방법조차 찾을 길 없는 그런 오디션 말이다. 오디션이 끝나고 문을 열고 나올 때 얼굴이 화끈거려 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그런 오디션. 이 날의 나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오디션.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오디션 인생이 싫었다. 더는 자신이 없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데 예측 가능한 지점까지는 올라갔지만 더 이상 올라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내 미래를 도저히 더는 그릴 수 없었다.


하얗게 맑고 깨끗했던 삶의 캔버스는 계속 회색과 검정색만 그려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불안감과 초조함에 멈춰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밀고 나갈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 나는 밀고 나갈 수 없었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 한 끼 겨우 김밥으로 때우고, 지하철 승차권도 제대로 못 사는 삶이 이어지는데 도무지 더 이끌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나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넌 최선을 다했어.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하지 않으면 괜찮아.’ 그래, 난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아쉬움은 가득하다. 다시금 기회가 생긴다면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싶다. 다시 한 번 꿈꾸고 다시 한 번 해내고 싶다. 비록 마크 러팔로와 같은 성공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니 바라지도 않는다. 오직 단 한 번만이라도 뮤지컬 배우라는 다섯 글자를 품고서 무대에 오르고 싶을 뿐이다.


내 인생, 가장 즉흥적이고 엉망진창이었으며 배고픔에 찌들고 좌충우돌이었지만 더없이 빛났던 20대의 그 순간을 지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재회’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세종대왕께서 창제해두셨나 보다. 너무 많아서 쓸 페이지가 없는 나의 버킷리스트 노트를 꺼내어본다. ‘할 것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너무 많은 나를 사랑한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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