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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눈물이 쏟아질 줄은 몰랐다. 첫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졌다. 수많은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왔고,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그렇게나 뜨거웠다. 분명 공연용 스포트라이트는 주연배우를 향해 쏟아졌을 텐데, 내 인생용 스포트라이트는 시종일관 나만 쫓아다녔다.
뭐 그리 대단한 나인가 싶고, 단지 나는 앙상블, 그중에서도 단 한 명이겠지만, 요즘 본편보다 더 인기 많은 영화들의 스핀오프를 보시라. 내 뮤지컬 인생도 충분히 그렇게 빛나는 조연, 아닌 더욱 유쾌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앙상블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참으로 넓고도 나를 편안하게 이끌어주는 곳이었다. 꿈꾸던 곳에 올랐을 때의 희열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해줄 수 없다. 온갖 형용사와 부사, 수식어구들을 끌어다 설명해도 모자랄 뿐이었으니까. 단지, 이것 하나만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인 뮤지컬배우 조기준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쉽게 익숙해지는 존재인가 보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공연장 문이 열리기 전부터 와서 근처를 기웃거리고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표정을 짓고, 연기를 하고, 몸짓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는데 몇 번 공연 횟수가 지나고 나니 딱 그렇게 남들처럼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변해가는, 초심을 잃어가는 배우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지적이 있고서야 다시 한 번 나를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없으면 죽는 줄만 알았는데, 결국 나도 그렇게 되다 보니 one of them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순간보다 무대에 있을 때가 좋았다. 객석에 앉아 있을 때보다 무대에서 날아다닐 때가 행복했다.
사실 뮤지컬을 하다 보니 연습실에서, 공연장에서 먼지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뮤지컬은 나에게 더 이상 형언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쁨과 함께 현대인의 질병,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이자 만성질환인 비염을 함께 선사했다. 이렇게나, 고, 마, 울, 수, 가.
인생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다고 하더니 딱 그러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 내 인생의 미증유의 시간.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 이 순간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를. 갖고 싶어 애가 탈수록 더 가질 수 없는 찰나가 있다는 것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멈추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여기 고생으로 물들고, 행복을 뒤집어 쓴 어느 청춘이 있었다. 남의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내 길만큼은 촐랑촐랑 뛰기 시작했던 그 청춘. 뮤지컬과 약 4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구나. 십수 년을 고생하고 영화 또는 드라마, 아니 예능에서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빛나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마지막에 달콤한 사과를 시원하게 한 입 베어 무는 영광을 누리는 자는 누구일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콤하게 익기만을 기다리는 풋사과를 계속 조금씩 베어 물었다. 하지만 최종 꿈꾸던 순간을 만나진 못했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로서의 커튼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지극히 행복하게 살았던 순간이었으니까.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한마디만큼 깨달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아프리카 세렝게티 같은 또 다른 세상을 당당하게 맞닥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결정 내린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펑펑 울었다. 너무 울어서 얼굴 분장이 눈물로 뺨을 타고 구석구석 흘러내렸던 기억이 난다. 광대뼈를 지나, 턱을 타고 목까지 흐르다 못해 쏟아져 내렸다. 굳이 동료 배우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도 알고 있으리라. 이 길에 들어섰다가 다른 길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렇게 보이려는 눈물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하나의 뮤지컬이 지방 공연까지 끝내고 나면 서로 묵묵하게 등을 두드려줄 뿐이라는 것을. 그 액션에는 ‘다시 만나자’와 함께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하자’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첫 공연 때 흘렸던 눈물만큼 선명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둘 다 같은 눈물이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전달하는 의미는 너무나도 달랐다. 하나는 시작의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는 눈물이었고, 하나는 떠남을 아쉬워하는 미련의 눈물이었으니까.
마지막 공연은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임했던 것 같다. 더 이상은 보여줄 수 없으니까. 무대에서 더 이상은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객석의 누구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난 ‘one of them’이었을 테니까. 다른 누군가로 대체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분명 나는 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내 뮤지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그 점만큼은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나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 《노트르담 드 파리》를 쓴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썼던 그러한 편지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를 출판사에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이니 말이다. 책 판매의 반응이 궁금해서 출판사에 물음표 하나만 달랑 적어서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 역시 재치 있게 느낌표 하나만 적어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잘 팔립니까?’를 ‘네, 잘 팔립니다!’로 대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레 미제라블》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시크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편지를 쓰고 싶다. ‘?’, 즉 ‘후회하지 않을 거지?’, ‘!’, 즉 ‘그래 물론이지!’ 이런 편지 말이다. 구구절절 말과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편지 말이다. ‘오늘의 기준이가, 내일의 기준이에게.’
여전히 나는 무대 위 뮤지컬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각본을 맡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주인공으로 빛이 나는 그런 뮤지컬 말이다. 언제나 조연은 바뀌고, 앙상블도 바뀌고, 스윙들도 바뀌는 그런 뮤지컬이다. 나의 뮤지컬은 바로 ‘Never Ending Stor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