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아주 힘든 이야기를 시작할 텐데

by Jeremy
강박 장애
: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불안 장애의 하위 유형이다. 반복적으로 의식에 침투하는 고통스러운 생각, 충동 또는 이미지인 강박사고(obsession)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강박행동(compulsion)이 주된 증상이다. 강박행동은 청결행동, 확인행동, 반복행동, 정돈행동, 지연행동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스스로 부적절하고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감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 《심리학용어사전》(2014) 중에서


1. A씨는 공공장소에서 절대 물건을 만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이미 감염되어 있는 것만 같은 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그 물건을 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면 두 번, 세 번 손을 씻고 또 씻는다. 그러다가 손의 피부가 벗겨진 적도 있다.


2. B씨는 집 밖으로 나갈 때 창문을 제대로 닫았는지, 가스레인지는 정확하게 껐는지, 전깃불은 잘 소등했는지, 수도꼭지는 잘 잠궜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그리고는 문 입구에 서서 머릿속으로 이 과정들을 잘 수행했는지 계속 생각해본다.


3. C씨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구토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기분 때문에 신경이 쓰여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공공장소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일까 봐 여러 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데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왜 이렇게 어렵고도 길게 썼지’라고 투덜거리다 보면, A씨와 B씨, 그리고 C씨가 누구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다. 그리고 ‘나’였다.


강박장애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이를 확실하게 설명해줄 만한 영화를 소개하겠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만 하느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도 시원하게 날리면서 두 시간만 기분 좋게 즐기면 된다.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이니 재미도 문제없다.


2004년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에비에이터(The Aviator)>.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는 비행조종사이자 공학자였으며 영화제작자였다. 더불어 강박장애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은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세균 감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악수를 피하고,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해서 씻고 또 씻었다. 우유를 마시는 그만의 방법에 집착하고, ‘그게 우리의 미래야’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한 편으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악수를 피하고, 우유 마시는 방법이 특별하고, 특정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게 뭐가 이상한 거지.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씻는 것은 좀 이상하긴 하네.’ 강박장애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쉽게 치부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잘 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죽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못된 행동이며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굴레 같은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해봐야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해버릴, 편견 가득한 사실도.



아프다, 너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아주 어릴 때는 그냥 좀 예민한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하지만 심하게 머리카락 꼬기, 과도하게 손 씻기, 이유 없는 헛구역질 증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나의 증상이 조금 더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른 증상으로 업그레이드되듯 이어졌다.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는 주위에 누군가와, 또는 무엇인가와 스쳤을 때 옷이 찢어졌을 것이라고 백 번도 넘게 확인해야 했던 중학교 시절이었다. 안 찢어진 것을 알면서도 보고 또 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이러한 무모하면서도 무의미한 행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또 다른 지옥인지를.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과 대학 진학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도무지 집중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박장애 증상에만 집중이 되었으니까. 당시에는 다른 진료도 아니고 신경정신과에 내원한다고 하면 그냥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지금은 신경과와 정신과가 나눠져 있지만 당시에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서 더욱 겁이 났다.


그곳에 가기 전, 나의 증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싶어서 도서관도 찾고, 서점도 방문해서 관련 책들을 읽어보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과는 아니고 신경과 쪽이라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즉, 어린 마음에 절대 정신질환자로 판정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첫 내원 이후, 도저히 ‘신경정신과’ 의사를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증오에 가까운 불쾌감이 들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나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나를 감싸고 보호해온 두꺼운 유리가 내 눈앞에서 사정없이 깨져버린 기분이었다.


의사: 무슨 증상이 있나요?
나: 자꾸 구토가 나오려고 합니다, 선생님.
의사: 네, 약 지어드릴게요.
나: 다른 증상도 있는데요.
의사: 약 먹으면 됩니다.


100%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아니겠지만, 대충 이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거 같다. 대화는 1분을 거의 넘기지 못했던 거 같다. 의사는 나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찾아본 책들에는 ‘상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통보’만 받았다.


이후로는 그냥 괴로워하고, 견뎌내고, 입을 막고만 있어야 했다. 하워드 휴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나 역시 유사한 고통을 겪어왔다. 이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첫 책을 썼을 때 하나의 꼭지로 이 내용에 대해 조심스럽고도 짧게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 몇몇 어머니들과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공감하실 수 있을까 걱정이 컸다. 첫 책은 ‘마흔의 솔로남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한창 무럭무럭 커 가는 자녀들과 살아가는 어머니들에게는 도무지 공감할 만한 구석이 없었다. 공부법 책도 아니요, 아빠 육아 책도 아니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는 책이다 보니 어머니들에게는 <사랑과 전쟁> 못지않게 이혼을 부추기는 사악한 가정파괴서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북 토크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기대감보다 불안감과 긴장감이 더욱 피어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어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물었다. “우리 아이가 손을 너무 많이 씻어요. 작가님은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한 분이 아니었다. 두 분, 세 분 계속 이어졌다. 많은 아이들이 강박장애로 고통 받고, 가족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분야 전문 의사는 아니지만 40여 년 가까이 그 병을 나의 또 다른 자아라 생각하면서 살아오고 있으니까.


그 날 이후 강박장애를 주제로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졌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TV에서, 뉴스에서, 예능에서, 심지어 책을 통해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어떠한 증상으로 아파하고, 어떻게 주위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지를. (이러한 흐름이 얼마나 고맙고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100%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강박장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책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잘 모르고 있거나. 그래서 꼭 써보고 싶다. 두 번의 스무 살을 겪으면서, 앞으로 몇 번의 스무 살을 더 겪으면서 내가 늘 끌어안아야 할 또 다른 나의 모습.


사라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를 찾아온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커다란 아픔으로든, 자그마한 아픔으로든. 첫 번째 스무 살인 ‘너’도 이러한 아픔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동안은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모습의 ‘너’를 사람들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니까.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야 하겠지만….


단지 이 사실 하나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혼자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이겨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이유가 궁금했고, 치료되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슴속에 온전히 품고서 이렇게 말해본다.

‘나는 강박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처럼 고통 받고 있는 당신과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우리가 나아지고 편안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에게는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는 강박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까요. 당신에게는 조금 더 장애를 이겨낼 수 있다는 의무도 있으니까요. 오늘 밤에는 아픔으로 눈물을 훔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편안해진 미소를 짓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강박장애자입니다.’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영화배우 메간 폭스(Megan Fox)와 제시카 알바(Jessica Alba),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현대미술가 앤디 워홀(Andy Warhol)과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odel)도 강박장애로 아파했다. 2015년 현재 공식적으로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2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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