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동시에 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하고 싶은 것과 덜 하고 싶은 것들을 구분하여 겨우 순서대로 한다. 사실 더 하고 싶은 것들 중에서 열심히, 재미있게, 꾸준히 하다가 싫증나면 덜 하고 싶었던 목록에서 하나둘 뒤져본다. 그러다가 살짝 그쪽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무엇인가와 썸 타는 기분은 언제나 좋다. 설레고, 떨리고, 궁금하다.
누군가 그랬다. 나의 고민을 들어줄 친구가 하나쯤은 있는 인생, 열심히 살아내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찰나가 생겼을 때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는 인생,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하나라도 있는 인생은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사실 내가 그런 말을 지금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중이떠중이 친구 1,000명보다 진득하고 진솔한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 나와 희로애락을 충분히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즐거운지 이해를 해주니 같이 맞장구를 쳐줄 수 있고, 왜 괴로운지 잘 알고 있으니 같이 손 맞잡고 슬퍼해줄 수 있으니까. 아무리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에 사람들 이름이 수천, 수만이면 뭐 하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인생 넋두리를 들어줄 한 명이면 충분하다.
어느 인간에게든 열심히 살다가 번아웃을 겪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일이 터져버릴 듯이 넘쳐나서, 아니면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 버리고 싶을 때 도망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밥을 먹고….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 펄떡펄떡 널뛰기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을까. 있던 희망도 다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요즘이다. 힘내라고 말하고 싶은데, 힘나는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침 신문을 구독한다. 참, 아저씨 같다고 주위에서 워낙에 신기해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신문이 좋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아 둘째나 셋째손가락에 침을 살짝 묻혀 억지로 넘길 때, 그리고 사각거리며 종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역시나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종이 매체이자 인쇄 매체인 신문을 받아볼 때는 기분이 좋은데 내용상으로는 1면부터 언제나 힘들기만 하다. 정치권은 맨날 싸우고, 경제계는 죽겠다고 난리다. 최근에는 바이러스 사태로 지치게 한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쌀 한 톨만한 희망조차 사라져간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여전히 하고 있는 것이 많지만, 지금도 하고 싶은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써보고 싶다.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엄마의 갓 지은 아침밥이 먹고 싶다.
- 우리 집 여섯 고양이들 털을 예쁘게 빗겨주면서 날아다니는 털 없는 순간을 10분만이라도 누려보고 싶다.
- 집안 거실에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책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싶다.
- 최근에 렌탈한 정수기 물을 시원하게 또 마시고 싶다.
- 창문을 활짝 열고 뒷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눈 감고 30분만 들어보고 싶다.
- 식탁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크림치즈를 슥슥 바른 베이글이 먹고 싶다.
-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현실감에 감사하고 싶다.
그렇더라.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있기나 할까.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더라. 노력이 필요하더라.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보며 지식을 쌓고, 그렇게 살아야 함을 깨닫는 지혜를 바탕으로 하나씩 둘씩 나에게 맞추어 실천해 나가야 하더라.
돈이 불쑥 하늘에서 쏟아진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로또 1등 당첨자들의 인생이 고통과 후회로 점쳐지는 이유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이다. 모두가 다 당첨만 되면 행복한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고,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난 대학 시절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을 통해 약간은 부족한 듯 ‘똑똑한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인간은 더없이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제일 잘나야만 하고,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종교인들이 소위 말하는 ‘내려놓음’, ‘비움’, ‘무소유’를 위해 노력하였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결국 내 것이 아닌데 내가 그것에 집착하고 헛된 애만 쓰다가 괜히 마음의 병을 얻고 싶지 않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100원을 잃으면 언젠가 1,000원이 들어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1,000원만큼 충분히 행복하다고 나를 다독였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내가 정신수련이나 마음수련을 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포기가 빨랐단 것이다.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나에게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먹으니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이었던 것이다. 천국이라고까지 표현한다면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안 오는 것은 안 오는 것인데.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오는 사랑은 소중하게 대하고, 나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랑은 크게 아파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사랑할 때만큼은 세상 그 어떠한 로맨티스트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려고 애쓴다.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 가라 할 만큼 뜨겁게 사랑한다.
요즘 청춘들의 삶이 갈수록 힘들고 고단하기만 한 거 안다. 그들과 함께 살지 않아서 굳이 ‘잘 안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들만의 고민이 있는 것을 내가 어떻게 100% 속속들이 알겠는가. 취업으로 고민하고, 결혼을 고민하고, 퇴직을 고민하고…. 아직 어린데 무슨 퇴직까지 고민하랴 싶겠지만 삶을 영위해 가는데 지금 이 순간에만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수록 안개는 더욱 자욱해지고, 미세먼지는 걷잡을 수 없이 진해져 가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마냥 포기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살아내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성공한 것일 테니까. 그러니 하이킥을 날려서라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행복도 기쁨도 계속 찾아봐야 한다. 파랑새를 찾아야 진짜 행복을 가졌다고 믿는 것처럼.
너만의 파랑새를 찾아내기를 응원해 본다. 세상이 절망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소박하게라도 나만의 방법을 찾아 재미없는 세상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낸 그 순간부터 분명 라이프스타일부터 바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얼굴 표정부터 변할 것이다. 절망적이고 포기해버린 얼굴에서 갑자기 생기가 돌고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하이킥을 한 번씩 날릴 때마다 미소는 더 짙어질 것이다. 순간순간 밀려들어오는 생기 때문에 동안이 되어 가는 기적을 맛볼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이유로 내가 스무 살이나 동안처럼 보인다는 말을 가끔 듣는 것일까?’ 하이킥을 너무 많이 날리다 보면 가끔씩 이런 부작용도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