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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Dec 27. 2020

[1] 창밖의 겨울나그네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책을 한 권씩 출간하고나면 기획거리는 언제나 머릿속을 맴도는데 시작을 하지 못하겠다. 내 나름대로의 '번아웃 증후군'이 생겼던 것이겠지. 한 문장 쓰는 것조차 귀찮고 다 잊어버리게 된다. 아니, 잊고 싶은 것이겠지. 


그렇게 약 두 달이 지나버렸다. 유튜브도 해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다 보니, '아,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좋아서,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잠깐 쉬기로 했다. 


그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너무나도 바보 같은 말을 진짜인 것처럼 말한다. 어떠한 변명거리가 생겨서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느꼈다. '이런, 바보 같은 자식.'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아니 것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 보았고,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와 왓챠를 통해 숱한 드라마들을 시청하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름 우리나라 드라마에 편견이 있다 보니 미드나 일드 등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치로도 싸대기를 날리고, 서로를 증오하고 괴롭히고, 남녀주인공만 빛나는 우리나라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강하다 보니 그랬다. 


또한 생각보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숱한 대가들은 엉덩이 힘으로 글을 쓴다고 하지만 난 금방 좀이 쑤신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서 노트북 화면과 정확한 각도를 이루며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나도 모르게 거북목이 되었다가 엉덩이가 의자 끝까지 밀려내려온다. 엉덩이의 힘은 여기서 더 밀려서 바닥으로 떨어져 "쿵"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버티는 힘을 이야기하는가 보다. 


허리는 또 어떤가. 약 20여 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받아놓고 구부정하기가 활 시위 같다. 나도 모르게 그러한 상태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고맙다. 이렇게 쓸 수 있는 용기를 준 여러 드라마들이여. 드라마들 사이사이에 들리는 대사들을 통해 힘을 얻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찾을 수 있었다. 


역시나 또 그랬다. 당연히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작은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간다면 좀 더 재미있고 긍정적이고 쾌활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역시나 당연한 생각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지만 '나의 집' 안에서 따숩게 보일러 틀어놓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창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기 거실의 온도는 무려 24도이다. 30도 넘게 차이가 나지만 이렇게 감사하며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에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음침한 마음가짐을 갖고서 생활해온 것은 아니다. 그냥 지금보다 조금 더 당연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거실 저쪽 너머에는 창문이 한쪽 벽을 시원하게 장식하고 있다. 아니, 지금은 따듯한 창문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겠지. 창밖에 겨울나그네들이 올곧게 서서 이쪽을 바라본다. 8층 같은 7층인 우리집 높이보다 더 높은 나그네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잎사귀들이 달려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다 갈아치워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창밖의 아름다움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힘들고도 피곤했던 마음을 창밖에 겨울나그네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랠 수 있는데 난 왜 그렇게 이 아름다움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거기에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 고마움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무사히 겨울을 보내고 곧 다가올 봄을 맞이하려는 설렘을 그들은 가슴속에 품고 있으려나. 아니, 뿌리에 품고 있으려나. 아니면 사실 봄, 여름, 가을을 무사히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려는 것이려나. 내가 겨울나그네가 아니다 보니 무엇이 옳은 것인지 결정 지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곳에 이처럼 이러한 모습으로 앉아 창밖을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라는 단어, 왠지 좋지 않은가. 정확한 의미가 없지만 그냥 무심코 툭 던질 수 있는 단어. 뭐라도 다 상쇄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단어. 그렇게, 그러한, 그토록 왠지의 마음으로 이 글들을 메워나가고 싶다. 


바람 손님이 추억을 몰고서 찾아왔나 보다. 겨울나그네의 귀 끝을 간질이려는 듯 살랑살랑 밀었다 당겼다 한다. 바람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그래서 지구를 한 바퀴 돌 동안 품어온 숱한 경험들을 겨울나그네에게 속삭인다. 


'네 어깨를 내어주지 않을래. 잠시 좀 쉬어 가자.'

'멀리 바다 건너에는 너 못지않게 키가 큰 겨울나그네들이 모여 살고 있지.'

'지구 한 바퀴 더 돌고 올게.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 있을 거야.'


나에게는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그곳에 한결같이 당연히 있어 왔던 이들에게는 신나는 이야기이겠지.


다시금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다 말고 드립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내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는 평소 잘 쓰지 않는 왼손으로 들고서 창가로 다가간다.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의 고마움을 잘 모르니까, 당연히 그곳에 자리하는 왼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다.




창밖이 참 예쁘다. 예쁘다 말고 다른 근사한 수식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굳이 꾸밀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냥 마음속에 바로 떠오른 형용사가 바로 그냥 '예쁘다'였다.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왼손으로 커피를 마시다가 살짝 창가에 흘렸다. 익숙하지 않던 왼손 사용이라니. 당연히 사용하지 않던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왼손에게 당연히 살짝 미안해졌다. 물건을 드는 것만으로도 왼손에게 일거리를 좀 줘야겠다는, 남들이 보면 이상할 것만 같은 생각을 넌지시 해본다.


창밖은 참 예쁘다. 여기 이곳에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커피가 참 맛있다. 향기도 좋다. 거리를 둔 것마냥 창밖과 창안은 창문으로 막혀 있어서 소통을 할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랜 시간 이곳에 살았으니 겨울나그네들은 나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 말을 건넨 적은 없어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 202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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