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Jan 04. 2021

[2] 배려라 쓰고 예민함이라 읽는다

글을 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뭔가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휘젓곤 한다. 재미있는 소재를 유쾌, 상쾌, 통쾌하게 잘 풀어내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다 못해 몰아붙일 때도 있다. 그러한 작은 강박을 떠안고 글을 쓰다 보니, 뜻대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마구마구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꽉 채운 흰색은 분명 종이일 테고, 검정색은 글자일 텐데 검정색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 쓰다 말고 노트북을 쾅 덮어버리기도 부지기수이다. 그 와중에 굳이 '작은 강박'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래도 누구에게나 사소하게 다가올 수 있을 만큼의 강박이라고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나를 배려하려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서 배려는 별것 아닌 듯 사소한 부분에서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빛이 반딧불처럼 특정 시간대에 아주 자그마하게 잠깐 빛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작은 빛이지만 우리는 그에 따스함을 느끼고 마음에 안정을 찾는다. 작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다. 작기 때문에 편한 것이다. 




굳이 이렇게 배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무래도 작년 한해 어느 여름 끝자락에 경험한 뒤끝작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많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또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한데, 베스트셀러가 없는 데에 따른 조바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던 즈음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다. '옴마나, 이게 무슨 일이람.'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니 이름 자체가 브랜드라 생각하기에 나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생긴 것인가 하는 뿌듯함이 일었다. 동시에 괜한 걱정 아닌 걱정도 들었다. 악마의 편집으로 나답지 않은 나로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쓸데없이 예민한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연락만 왔는데, 왠 오두방정인가 싶긴 했지만 괜히 그랬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너무 잘 어울린다며 담당자 분께서 나를 진심으로 설득하셔서 결국 제작진 미팅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미팅 후 OK 사인까지 받았다.


1회성 출연도 아니고, 계속 출연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많이 신기했다.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먼저 김칫국도 한 사발 아닌 한 양동이째 들이키고 있었다.


대충 언제부터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오갔고, 야외 촬영 장소에 대한 의견도 나에게 묻기에 이곳저곳 추천도 하고, 내가 그 장소에 직접 연락해서 부탁도 하고 그러는 등 살짝 비행기 일등석을 탄 듯 붕뜬 기분으로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촬영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바뀌고, 어느 순간 연락도 뜸하더니 갑자기 제작진이 전격 교체된다는 공지를 한 번 들었다. 다음 제작진에 이야기를 잘해두었으니 함께 잘해나가면 된다는 언질이 있었다. 그리고는 단 한 번도 다음 제작진에게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던 몇 달 후 프로그램은 힘차게 출발을 하였고 나는 그냥 팽 당한 기분으로 프로그램 시작 소식만 들어야 했다. 인터넷 기사로... 


사실 계약을 한 것도 아니었고, 계약을 한다 하더라도 방송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일 텐데 괜히 너무 들떴나 싶었다. 가끔씩 출연자는 몰랐는데 어느 날 기사가 뜬 것으로 방송 아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기분이 바로 이러한 기분이었나.


그러면서 생각이 났다. '전화 한 통이라도 해서 상황 설명이라도 좀 해주지. 이건 예의도 아니고, 사람 배려할 줄도 모르고, 뭐지' 하는 그러한 생각. 그렇겠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겠지. 한편으로는 꽁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굳이 쿨하게 넘길 수 있을 텐데 예민하게 군다고 싶을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 예의라는 자기계발적 넋두리마저 끄집어내어 꼬깃꼬깃 곱씹어본다. 제작진에게 나는 그냥 지나가는 남자1이었을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배려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에야 이렇게 한마디 끄적여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답답했던, 그리고 속상했던 기분을 여기 대나무숲에서 마음껏 질러보는 것일 수도 있겠지. 이제는, 이렇게 외치고 난 다음에 깔끔하게 잊어버리련다. 굳이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굴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나답지 않은데 너무 출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ㅈㅁ;ㅐ뎌루 ;ㅐㅁㅈ 넏 ㅐ러 ㅁ ;ㅡㄴㅇ러 ㅡ;ㅁㄴ얼너 ㅇ;ㅓㄴ;ㅣ.'


정말 위에 써둔 엉망진창 글자 느낌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안녕, 더 이상은 그만. 딱 한 번은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그냥 잊어버리련다. 그런데, 그런데, 언젠가, 언젠가 방송 출연 기회가 생긴다면 재미난 에피소드로 한마디 할 수 있겠지, 라고 또다시 뒤끝작렬하게 나를 구슬려본다.


그렇게 지난 것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고자 2021년 첫 글을 이렇게 끄적여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창밖의 겨울나그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