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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Jan 05. 2021

[3] 코요테, SE7EN, 혜은이, 인순이의 공통점은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세상에 둘도 없던 모범생,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세상 꿈쟁이. 왠 꿈쟁이냐고 하겠지만, 공과대에 입학하고나서 학교가 너무 재미없어서 나만의 꿈을 찾아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재미없으니 뭔가에 홀린 것처럼 학교 밖을 기웃거려야만 했다. 매일 매순간 학교 정문에서 나만 기다려주는 여신스러운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꿈이 아나운서, 아니면 방송국 PD였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지 않겠나. 어쩔 수 없었다. 내 인생이지만 내 인생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러한 순간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 후회도, 원망도 없다. 그때의 내가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괜한 구시렁거림은 꼭꼭 싸매서 넣어둬, 넣어둬.


당시 케이블 방송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음악방송에서는 VJ(비디오 쟈키)를 공채로 선발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했던 VJ는 역시나 이본과 이기상. 최근 탑골 문화와 음악의 열풍으로 90년대 시대상이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와 있으니 아는 사람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라디오 DJ가 아니라, 보이는 음악방송 VJ가 너무 되고 싶었다. 당시 내 나이 스물? 스물하나? 그전까지 공부만 열심히 하고, 대학 입학 원서 쓰라는 학교의 학과에 성적 맞춰 잘 입학한, 자칭 타칭 타의 모범이 되는 대한민국 청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VJ라니 이게 뭔가 싶은 얼떨떨함은 나에게도 존재했다. 마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 스쿨 입학 면접 시 빌리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날으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요."


가출을 해버렸다. 그렇다. 해버렸다. 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의지를 뛰어넘는 어떤 상위의 힘이 나를 이끈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아닌 듯, 나를 뛰어넘은 그러한 힘이 나를 출가도 아닌, 가출을 하게 만든 것이다. 암묵적인 시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정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가출이었다. 가족들 앞으로 메모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집을 나왔는데... 이틀 후 경기도 어딘가 친구 집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별로 걱정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워낙에 제앞가림 잘하던 애니 어디 친구들이랑 놀러갔겠지 싶었다고 하셨다. 덧붙여 이틀만에 전화였으니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으니까. '아, 정말 나 소심하다. 가출이라면 전화도 안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왠 이틀만에 전화라니. 가족들은 나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나만 걱정한 것이었다니.'


지독히 예민하고, 더없이 소심함 때문에 나 스스로와 가족을 안심시키고 나니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건데, 가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VJ 오디션. 그 오디션을 보려면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오디션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냥 음악 공부 열심히 하고 카메라 앞에서 말 잘하면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카메라 뒤에는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이 지원자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처음인데 카메라 뒤에 누가 앉아 있는 것 또한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었다. 사실 이 모든 상황, 즉 시츄에이션이 처음이었다. 당황스럽고, 낯설고, 막막한 기분이 온몸 구석구석을 찔러댔다. 그러니 오디션 도중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대본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다, 주어졌던가. 하지만 그러한 상황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처음이었으니 주어진들, 그렇지 않은들 그게 무슨 대수랴. 이러나 저러나 망치기는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방송에서 사투리를 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니 부산사투리를 벌벌 떨며 써대는 지원자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오디션이 끝났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오디션. 아무런 준비도 되지 못했고,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랐던 오디션. 하지만 난 참으로 긍정적인 인간이었나 보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다음 오디션이 기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슨 오디션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 이후로 나의 20대는 오디션의 연속이었다. 사회 생활을 배우로 시작했으니 누군가가 회사 면접을 보듯이 나에게는 오디션이 나의 면접이었다.


유명 배우들이 인터뷰 도중 수백 번의 오디션을 봤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앞에서 살짝 주눅이 든다. 나는 몇십 번 겨우 봐서 유명 배우가 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다. 나는 지금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트로피가 주어질 리 없겠지만, 뭐 그까짓 것 갖고 싶다면 비슷하게 만들어서 내가 나에게 수여하면 되지. (하하)


누군가에게 오디션이나 면접이 어떠한 의미인지 물어보고 싶다. 분명 고통과 좌절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희망과 열정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직전까지 올 수 있게 하는 그 희망과 열정. 그러한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기에 숱한 오디션에 임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합격하면 합격하는 대로. 


부산 출신에 사투리를 쓰는 공과대생. 어떠한 프로그램에서도, 공연에서도 나를 통과시켜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분명히 여러 핸디캡을 딛고 무사히 통과한 적이 있다. 심지어 여러 번 있다. 





믿는 만큼 이루어졌고, 끌어당기니 당겨졌다. 꿈을 꾸기만 했을 뿐인데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다음 오디션은 뮤지컬로 이어졌다. 


PS. 코요테, 세븐, 혜은이, 인순이의 공통점은? 정답. 불렀던 노래 제목 중에 <열정>이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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