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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Jan 18. 2021

[4] 사라질 뻔한 것들에 대하여

얼마만이던가.

커피만을 사러 커피숍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내부 분위기가 궁금해서 카페를 방문한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커피숍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여담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곳을 따스하게 감싸던 조명은 꺼진 지 오래였다. 

커피숍 문을 열고 방역 준수 사항을 체크하고, 계산대에 가서 주문하고, 테이크아웃 하여 나오기까지, 딱 그 거리만큼만 불이 켜져 있던 것이 어제까지였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모든 공간에 불이 켜졌다.

불 꺼진 공간을 촘촘하게 채우던 탁자와 의자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곳에 앉아, 마스크를 꼼꼼하게 쓰고, 미소를 한껏 띠며, 더없이 들뜬 기분을 맞이했을 누군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이제는 숨 쉬는 것 못지않게 익숙해져버린 스마트오더, 사이렌오더를 통해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멍하니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고, 공부를 하고... 그랬던 그 모든 순간들과 찰나가 100% 만족스럽게 돌아온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일상의 모습이 사라져버릴까 심히 두려웠었다.




아날로그 시대가 사라진다고 걱정했을 때만 해도 모든 과정은 시나브로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첨단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사라져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한순간이고 너무나도 순식간이다.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아쉬워할 틈도 주지 않고 한 줌의 재처럼, 휙 불다 지나쳐버리는 바람의 끝자락처럼 그렇게나 빠르게, 더없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뻔한 것들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기 전에 충분히 즐기고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감사하고, 많이 고마워해야겠다는 순진한 다짐마저 피어오른다.


언제 다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던 시간이 사라져버릴 지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최대한 아껴가며 누려야겠다. 물론 마스크는 열심히 쓰고, 많이 떠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창가에 자리한 카페 의자에 앉아 잠깐이라도 소복하게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볼까 했는데 그 마음을 다잡기가 영 쉽지 않다. 그간 얼른 테이크아웃 해서 받아가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조금씩 카페에서의 여유와 행복이라는 기억을 내 몸에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참,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나 특별해져 버리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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