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Feb 11. 2021

[5]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두려움

정말 열심히도 썼던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뭔가에 홀린 듯 글을 쓰고 타인의 글도 편집하고, 하는 그러한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나 스스로를 쉼없이 채찍질하며 무려 7권의 책을 후루룩 번갯불에 콩 볶은 것처럼, 아니 그냥 책 쓰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것 마냥 써 내려갔다가 아니라 써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이 살짝 두려운 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나 출판사에서 수백 권은 족히 넘는 책들을 기획하고 편집하며 저자들에게 좋은 글, 잘 읽히는 글을 쓰셔야 한다고 닥달하던 나였는데 내가 그런 글을 써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보니 단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두려워서 온몸을 벌벌벌 떨고 있는 찰나가 찾아온 것이다.


뭐 얼마나 썼다고 슬럼프라고 굳이 명명하는 것일까 싶었다. 그랬다. 그 단어를 쓰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번아웃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나 자신을 달래보았다. 번아웃이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나를 재충전한 상태에서 다시 몰아칠 수 있는 여건이라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슬럼프라고 하면 해답을 찾을 수나 있을지 두려움과 함께 걱정,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절망마저 몰려왔다. 도저히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쩌나 하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를까봐 더욱 불안해졌다. 




사실 그러던 와중에 모 온라인 비대면 글쓰기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나만의 책' 한 권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까지 주어지는 과정이라 주저하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하는 자신감이 있는 분야였기에 함께하겠노라 덜컥 수락했다.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10여 년 넘게 매끈하게 글을 잘 써주신 분들의 글을 편집했던 내가 아니던가. 감히 그분들의 글에 내 멘트를 달아 더 잘 써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 함께하시는 분들은 글을 처음 써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다. 한마디 한마디 멘트를 달아야 할 텐데 이 부분이 문제고 저 부분이 문제고, 끝없이 문제점만 제기하게 되는 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될까봐, 편집자의 DNA가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피어오를까봐 많이 걱정도 되었다. 어느 정도 선에서 멘트를 달아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조금 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유명 작가의 책을 읽고서 딱히 눈물을 지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수업을 많은 수강생들과 함께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그동안 엄청난 착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숱하게 반성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많은 멋진 작가들과 함께 작업해왔기에 그분들 글의 기획력, 컨셉, 방향성 등이 글쓰기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정석처럼, 바이블처럼, 신념처럼 믿어온 나였다. 문장도 더없이 깔끔하고 비문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수업 중에 만나게 되는 글에는 비문도 많았고, 방향성도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조심스럽게 다르게 써보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코멘트를 쏟아내듯 건넬 수는 없었다. 나는 작은 조약돌을 하나 던진 듯 가볍게 생각했어도 글을 처음 쓰거나 아직 글에 익숙치 않은 분들에게는 거대한 울산바위가 되어 날아오는 느낌일 수도 있으니. 


그런데 수업을 매주 진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물론 첫 수업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써달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이렇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써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끄집어내는 것으로 주춧돌을 삼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많이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알았다. 아니 깨달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렇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난 매주 그분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힐링을 받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어떠한 분의 글을 읽을 때는 오늘은 어떻게 글을 쓰셨을지 너무 궁금해서 설레는 마음을 겨우 꾹꾹 눌러담고서 읽기 시작한다. 다른 분의 글은 너무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여서 펑펑 울었던 적도 있고, 두 손을 꽉 쥐고서 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늘 기획과 컨셉, 방향성에 맞춰 매끈하게 잘 써진 전문가들의 글들만 읽었고 그러한 글들을 대하는 나 자신을 참으로 당연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또 다른 정답은 최근 나와 함께하시는 분들의 글에 숨어 있었다. 조금은, 아니 꽤 거친 글이지만 깊은 감정과 함께 순수함과 진정성이 너무 묻어나와 나를 홀리게 하고 취하게 하는 그 글들 말이다.


너무 솔직해서 이렇게까지 써도 괜찮을까 싶은 글이지만 다음 편 글이 읽고 싶어서 일주일이 목이 마르듯 기다려지는 그런 글들에 푹 파묻혀 있는 요즘도 참 괜찮다, 더없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왕초보 글쓰기 분들의 글을 읽으며 글을 쓴다는 것이 반드시 책을 출판한다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만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의 기쁨을 꽤나 많이 누리게 된다.




나는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마저 충전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다져갈 에너지를 마에스트로의 신작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제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은 왕초보 작가들에게서 얻고 있다. 사실 그분들의 글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세상 모든 희로애락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있는지 그분들은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이 기회와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오늘은 어떤 분이 지친 나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실지, 아니면 또 한번 눈물을 훔치게 하실지 기대가 된다. 꼭 놓치지 않고 매주 글을 제출해주셔야 내가 그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제는 다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두려움쯤은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나 역시 거칠게 표현할지는 몰라도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주며 나의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싶다. 조금은 부족하면 어떠한가. 진심이 담겨 있는데. 조금 틀리게 쓰면 어떠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확실히 느껴지는데. 


그렇게 나는 오늘자 과제를 확인하러 다시금 떠난다.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의 마음이 아니라 글바다를 여행하는 선장이 된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들을 만나러 떠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