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Mar 16. 2021

[6] 디지털시대에 후불교통카드의 의미

버스는 도대체 어떻게 타는 거야?

Part 1.


세상에나,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만 같다. 습관의 힘은 언제나 칭송받지만 예외의 법칙이 발생하게 되면 멘붕에 빠지기 십상이다. 때는 어느 휴일 아침 일찍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모 체육관을 방문해야 했다. 아침 일찍,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 새벽 6시부터 눈 비비고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야 했다. 혹시나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게으름 한계치에 다다르게 될 나를 닥달하고자 알람을 무려 3개나 맞춰놓았다. 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이 정도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이때만 해도 문제없었다. 운동용 신발도 잘 챙기고, 라켓도 챙겼다. 운동복도 챙기고, 잘 다독거린 내 마음도 가방 속에 고이고이 담아두었다. 늘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챙겼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휴일 아침부터 상쾌한 마음으로 운동할 생각에 기분까지 들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햇살은 이미 충분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맞다, 오늘은 XXX 형님과 내기하기로 한 날이지. 날씨가 이리도 좋으니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너무 좋은 긍정은 부정에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케이스 사이에 끼워둔 후불교통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곳에 고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 철썩같이 믿었는데, 철썩같이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아, 쓰앙. 이게 뭐야.' 그랬다. 새로이 구입한 스마트폰 가죽케이스에 카드를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저만치서 쌩 하며 다가올 때 느꼈던 것이다. 


이때부터 멘탈이 붕괴를 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로. 다행히 지갑은 있었고 여분의 신용카드는 있었는데 얘네들은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없었다. 쓸데없는 비용 지출을 막으려고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보란 듯이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었는데 하필이면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카드들만 잘라낸 것은 또 뭐람. '쉣.'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스를 타기에는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설상가상 현금도 없었다. 땡전 한 푼 없었다. 그랬다. 요새 누가 현금 들고 다니겠는가. 카드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스마트 세상인데. 카드가 안 되면 행여나 스마트폰으로도 다 해결되는 디지털 세상인데. 그런데 난 스마트한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스마트폰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딱 그 순간만큼은. 결국 택시를 타야 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신용카드를 잘랐는데 불필요한 지출이 예상치를 훨씬 넘어버렸다. 택시에서 내릴 때 카드를 태그하지 않고 IC칩 인식 방식으로 요금 결제를 해달라고 기사분에게 카드를 건넸더니 "요새는 이렇게 하는 사람 없는데, 영수증도 줄까요'라며 굳이 덧붙이셨다. "영수증 괜찮습니다."




Part 2.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타면서 필요 이상의 지출이 훅 들어와 짜증지수가 아침부터 꽤 올랐지만 체육관에서 벌어진 내기 시합은 여유 있게 이겨버렸다. '기.분.좋.아.졌.어.' 


승리를 기념하고자 같이 점심을 먹자던 친구의 요청을 미안한 마음 듬뿍 담아 거절해야만 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마흔 중반을 넘어가는 나의 체력을 이제는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다. 체력을 더 키우고자 체력을 그 이상으로 더 소모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냥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고맙게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승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라는 녀석의 배려가 고마웠다. '대, 땡큐.'


차를 타자마자 쭈뼛쭈뼛 이 한마디를 던져야 했다. 승자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빈대스러운 모습이 드러났다. '혹시 2~3천 원 있냐? 아침에 후불 기능 되는 카드를 집에 두고왔는데 현금도 없고 해서 지하철비 정도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주섬주섬 지폐를 뒤지던 친구는 2천 원이 있다며 건넸다. '요즘 세상에 현금을 들고다니다니, 세상에나. 대.다.나.다.' 하지만 입 밖으로 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혹시나 안 줄까봐. 


그런데 배려심이 깊은 녀석은 만에 하나 모르니 1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가라며 건넸다. 하지만 그때 덥석 1만 원짜리 지폐를 낚아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못한 후폭풍이 그렇게나 커버릴 줄이야. 또 한번 아침에 이어 멘붕이 올 줄이야.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5]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