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Mar 22. 2021

계약서에 작가가 왜 갑이냐구요, 누가 봐도 을인데

4대 보험으로 보호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계속 강조하지만, 아니 평생을 강조할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이 편하다는 사실을 하루에도 수 번, 수십 번씩 강조하다가 돌 세례에 맞아 강남대로변 한복판에서 장렬히 쓰러지더라도 또 이야기하고 싶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 나쁘게 말하면 반백수인 나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의 테두리를 너머 사각지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4대 보험이 되지 않는다. 아니다, 정확히는 4대 보험 중 2대 보험만 가능하다. 그것도 내 돈으로만. 


직장인으로 살 때는 그 세금 꼬박꼬박 떼어가는 국세청이 세상 그 무엇보다 미웠다. 가끔은 저주도 퍼부었다. 인정한다. 나의 오만함을. "야, 이것들아. 쥐꼬리 반에 반토막도 안 되는 내 월급에서 그렇게 칼같이 떼어가면 나는 뭐 먹고 살라고. 그렇다고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뭐란 말이더냐. 말 좀 해봐라, 이것들아"라고 마음속으로만 수천 번, 수만 번 외쳤다. 월급 명세서 받을 때마다 이건 뭐 루틴이 되어버렸다. 나만의 삶을 관통하는 규치적인 루틴 말이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뮤지컬 배우로 삶을 연명할 때는 월급이 적건 많건 4대 보험의 혜택을 받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뭔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그들을 보호해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다쳐도 내 돈 굳이 쓰지 않고도 치료비가 나올 테니까. 심지어 4대 보험의 절반은 회사가 비용 부담을 해주는 혜택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프리랜서, 아니 파리목숨 같은 비비정규직들(비정규직보다 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은 다치면 무조건 울며 겨자 왕창 먹기로 내 돈을 써야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뮤지컬 공연 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각목 소품을 매번 사용해야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각목 모양을 가장한 소품이었다. 이 소품을 이용했을 때는 연습 때도, 심지어 공연 중에도 한번도 다치지 않았다. 수십 번 이상 합을 맞춰보고 그 각목 소품을 피해야 하는 느낌이 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소품 담당자가 각목 모양의 소품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쌔~했다. 결국 공사장을 돌아다니던 담당자, 진짜 각목을 가지고 왔다. 나의 상대배우에게 조심조심 사용하라고 두 번, 세 번 당부하면서. 나에게도 조심하라고 네 번, 다섯 번 당부하면서. 둘이 같이 불러놓고 여섯 번, 일곱 번 당부하면서.


그런데 이게 웬걸. 슬픈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흥분한 상대배우가 각목을 너무 휘둘렀던 것이다. 나는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끝을 정통으로 맞았다. 그런데 공연 중이라 그리 아픈지 몰랐다. 반면, 바닥에는 이미 뚝뚝 떨어지는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기절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야 그날 저녁 뉴스에 공연계의 암울하고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집중 취재가 나왔을 것이고, 나는 거룩한 사명감을 안고서 공연계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억지로 억지로 1막을 마쳤다. 잠시 인터미션 시간 동안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손가락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다시금 내 정신이 아닌, 혼미한 상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2막에서는 나의 분량을 빼기로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응급 치료를 받았다. 깁스를 제대로 해야 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그 이전에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 내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끝은 뼈가 잘못 붙어 있다. 생활하는 데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전해야 할 섬섬옥수 내 손은 그렇게 온전하지 못해버렸다. (완벽한 손이었어야 장가를 갈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직 미혼이란 말인가. ㅠㅠ 그런 거란 말인가. 내 손의 저주란 말인가. 세상에나)




작가라는 호칭을 들을 때면 참 기분이 좋다.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고, 특별해지는 황홀함이 몰려온다. 그런데 자격지심이 은근 몰려올 때가 있다. 일 때문에 미팅 나온 담당자분이 말끔하게 직장인 의상, 즉 슈트를 갖춰입고서 목에는 회사 출입증을 걸고서 법카를 당당하게 긁는 모습을 바라볼 때이다. '아, 님께서는 꼬박꼬박 월급도 받고 계시고 4대 보험의 혜택도 두둑하게 받고 계시잖아요. 나중에 혹시나 회사에서 사악함을 품고서 나가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실업급여의 은혜도 누리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러니 제가 보기에는 제 직업명 끝에 '님'자를 붙이기보다는 님의 직업명 뒤에 '님'을 붙이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 슬픈 내 작가 인생이여.'


계약서를 쓸 때도 아무리 봐도 나는 '을'이 맞는 듯한 희안하게 계약서에는 내가 '갑'으로 되어 있다. 갑질은커녕 을질도 못하는 나를 갑이라 띄워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4대 보험의 유혹이 더욱 커진다. 그냥 다시 직장 들어갈까 하는 유혹이 '아내의 유혹'보다 더 사무치게 다가온다. 민소희처럼 눈밑에 점이라도 찍고 입사해버릴까보다.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성형도 안 했는데 말이다. 신분 세탁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겠지?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는 것이 너무 싫다. 이 나이에 무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단 말인가 싶다. 아무래도 대행 업체를 찾아야 하나 싶다. 글쓰는 사람이 이런 거 쓰는 거 싫다고 하면 누가 글쓰겠냐고 하겠지만 다른 글쟁이들에게도 물어보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분명히 쓰기 싫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취업이 세상 모두에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방구석 사장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4대 보험, 그중에서도 산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행여나 다치지 않게 방구석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되겠다. 다치면 내 손해가 아니던가. 어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산재 보험의 혜택이 골고루 퍼질 수 있기를 두 손 꽈악 모으고 이빨도 꽈악 깨물고 기도하고 빌어본다. 필요하다면 정화수 떠놓고 뒷산 가서 매일 천지신명을 목 놓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니 수백만 직장인 여러분,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에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맙시다. 원하신다면 저의 위치와 바꾸어드릴게요? 재택근무 하고 싶으시다고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도 평생 재택근무가 가능하답니다. 저는 재택근무에서 벗어나고 싶거든요. 누군가와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누며 공기청정기가 상쾌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무실 출입증도 목에 걸고, 회사 법카도 보란듯이 쓰고 싶어요. 이렇게 이야기 들어보니 직장인이라는 위치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당신이 너무 위만 보고 살려고 해서 그래요. 적당히 아래도 볼 줄 알아야 삶에 밸런스가 생긴다니까요.


고개를 너무 들기만 해도 안 좋아요. 적당히 숙일 줄도 알아야지 가을 평야에 샛노랗게 벼가 익듯 잘 여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너무 뻣뻣하게 들기만 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니까요. 세상만사 이치가 참으로 톱니바퀴 딱딱 들어맞듯이 그렇게 정확할 수가 없더라니까요. 말이 좋아 작가지, 실제로는 방구석 사장이 되어보니 온 세상 지혜와 철학, 제가 다 품고 있는 것처럼 사고 시스템이 변하더라니까요. 소크라테스도 되었다가, 부처도 되었다가, 공자도 되었다가, 대통령도 되었다가, 국무총리도 되었다가, 하청업체 용역 담당자도 되었다가, 거리 청소부도 되었다가 그렇게 살아지더라구요. 100% 이해하진 못해도 말이지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유들유들하게 살아보자구요.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가 되어보니 편집자를 리스펙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