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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Sep 22. 2015

[15] 이런 취미 하나쯤이라는 말에 다들 키득거린다

이벤트 당첨의 신이라 불러다오. 방송국 취재 요청까지 받았으니.

취미가 안겨주는 즐거움은 손끝에서 시작해 손맛으로 이어진다. 춤을 추느라 팔을 쭉쭉 뻗으며 손끝으로 상대에게 대화를 요청해도, DIY에 빠져들어 하루 종일 톱과 망치로 뚝딱거려도, 걷기에 심취해 삼림욕을 하듯 부유해 걸을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걷는 데도 손맛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걸을 때 팔을 흔들지 않으면 균형 감각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을 자유롭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되묻겠지?  


“그건 손이 아니라, 팔이잖아요.”  


혹시나 이럴까봐 셀프 현답을 준비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산들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 느낌에 좀 더 빠져들려고 잠깐 멈춰 서서 눈을 감은 뒤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거죠. 나무나 풀을 스치며 걸어본 적 없나요? 바스락거리면서 동시에 사그락거리는 그 감촉, 그 맛이 손끝에서 느껴진단 말이에요. 맞잖아요, 손맛.”  


“네, 그렇군요. 손맛이라고 해두죠. 알겠어요.”  


끝까지 손맛이라 꾸역꾸역 우길 테다. 분명 그 맛을 알기 때문이다. 혀가 아닌 손끝이 전달하는 마약 같은 취미의 향응을 말이다.    



살림도 장만하더라 


그런데 빠지면 빠질수록 절대 멈출 수 없는 취미가 하나 있다. 물론 악착같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손맛의 유혹을 느끼고 또 느끼게 한다. 투자한 물리적 가치보다 거두어들이는 만족감과 시각적인 즐거움이 더욱 큰 취미. 진짜 제대로 홀릭하게 만드는 그것. 바로 ‘이벤트 응모’다.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OOOO’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뿐인데. 성스러운 21세기형 현대 바이블마냥 잡지를 깊숙이 탐독하다 독자엽서에 몇 자 끄적였을 뿐인데. 백화점 경품 추첨 박스에 응모지를 담갔을 뿐인데 전화가 당도한다.   


내가 또 당첨된 것이다.   

스펀지가 물을 주욱 빨아들이듯, 어망에 고기들이 줄줄이 낚여 올라오듯, 솔직히 나보다 백배는 잘생긴 친구 놈 김OO이 헤어지기가 무섭게 다음날 LTE 속도로 여자 친구를 새로 만났다며 어제 흘린 눈물 오늘 웃음으로 거두어내듯 말이다.  

이거 생각보다 시크릿 비법이 숨어 있다. 자, 어렵다고 생각하면 무한히 어렵기만 한 이벤트 당첨 비법, 지금부터 공개하련다. 놓치지 말길. 신혼살림을 장만했다는 고수들의 풍문도 들린다.   




첫째, 애틋하라. 추첨자의 마음이 동하리니.

둘째, 깨알같이 쓰고 또 써라. 노력의 대가는 언제나 정직하리니.

셋째, 응모지는 반드시 한 번 또는 두 번 접어라. 추첨자의 손에 걸리기 쉬우리니.

넷째, 엽서는 컬러풀하게. 띄지 말라 해도 눈에 띄리니.

다섯째, 한 번에 포기 말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경품 없으니. 

여섯째, 경품회사를 무한정 칭찬하면서도 살짝 아쉬움을 담아라. 살짝 가식을 내려놓을 필요도 있으니. 

일곱째, 1등 욕심을 버려라. 2등에 몰아주는 것도 가능성을 높이는 탁월한 전략이니.  




오디오, 스니커즈, 러닝화, 자전거, 옷, 화장품, 상품권, 모니터, 여행 상품권 등. 웬만큼 살림 장만 고수가 따로 없다.   

노력 대비 만족도 최상. 

비용 대비 수익률 최고. 

기대감 대비 흥분감 절정.    



마이 해피 파라다이스 


응모하기 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기에 응모는 음모다. 덧붙여 응모는 중독이다. 강력 추천한다. 아니다, 사실 추천하기 싫다. 파라다이스처럼 누려왔던 당첨의 희열을 블루오션이 아닌 레드오션으로 만들어버릴 테니. 그렇게 되면 난 한창 업그레이드된 비법을 고민해야 할 것 아닌가? 일곱 가지로 충분했던 것을 열 가지로 확장시키는 거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그런데 뭐 이런 게 취미냐고 묻는 지인들이 있다. 그럼 늘 테이프 무한반복 재생하듯 이렇게 말한다.  


“사전에요,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거라 적혀 있어요. 그러니 취미가 맞아요.” 


“그런데 넌 이제 완전 전문가 다 됐잖아. 그럼 취미 아니잖아. 한 달에 2~3번씩 이벤트 당첨되는데 그거 무슨 취미냐?”


“그래도 돈을 버는 건 아니니 취미가 맞다니까요.” 


내 인생 처음으로 이벤트 당첨 비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꼬깃꼬깃 감추고픈 프라이빗 시크릿을 자물쇠 채운 일기장에 켜켜이 써놓았는데 엄마가 방청소 하다 그거 다 읽어버리고서 것처럼. 그런데 집에 돌아온 내 얼굴을 보고서 허걱, 하는 엄마의 표정. 그 찰나를 만난 것처럼 쑥스럽고 많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당부하련다.   

그 누구도 신성한 내 응모 영역으로는 침범해오지 않기를. 

나보다 더 당첨 잘되는 사람은 제발 없기를.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신께 기도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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