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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Sep 30. 2015

[18] 지금이라도 버스킹해도 괜찮을까?

악기를 배우는 이유는 한 가지. 버스킹을 꿈꾸다.

서른아홉이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올 때는 세상이 다 뒤바뀔 줄 알았다. 젊은 날의 패기는 그대로 가슴에 심어둔 채, 여전히 몸은 가볍다보니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저씨가 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노래방에서는 절로 <서른 즈음에>를 너나 할 것 없이 불러제꼈다.

그렇다고 해서 처절하진 않았다.

여전히 젊다고 자만했으니까.

서른아홉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당당히 고개를 쳐든 것보다,

자의반 타의반 고개를 숙이는 상황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자존심을 꼬깃꼬깃 이면지에 싸서 휴지통에 내팽겨치진 않았다.

단, 퇴근하고서.

회사에서는 부속품이다.

스위스 명품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이가 딱딱 맞아들어가야 한다.

누군가 하나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시계는 멈추어버린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 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난 이제 겨우 서른아홉인데.

패기는 사라지고 현실은 눅눅해져 간다.

곧 마흔이 다가온다.

시계부품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마흔을 바라보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서른아홉에 인생 과외를 받아보기로 했다.

지방 집에 두고 온 10년도 더 된, 

먼지가 뽀얀, 덧붙여 여섯 줄마저 녹이 슬어버린

기타를 가지고 왔다.

기타 잡는 법도 모른다.

충동적으로 동호회에 가입했다.

기타줄을 갈고, 틀어진 바디를 수리받았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렀다.

야근을 하지 않더라도,

기타는 빠지고 싶지 않았다.

밥은 한끼 굶더라도, 

기타 연습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젠 제법 몇 곡 연주한다.

동호회에서 기타 발표회가 있던 날,

당당하게 연주하고 노래불렀다.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 시계부품이 아니라,

내 인생의 시계를 만드는 장인이 되어야겠다고,

<미생>에서 박 대리가 스스로를 깨닫고서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아오를 것처럼

당당해졌듯이,

나 역시 내 인생을 조금 더 활기차게

누려야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이 들었다.

서른아홉이다.

그리고는 마흔이다.

마흔이 되기 전,

인생 걸쭉하게 과외받고 싶다.

스마트폰 디지털 다이어리가 아닌,

손으로 끄적거릴 수 있는 손맛 나는

아날로그 다이어리를 꺼냈다.

그리고는 적었다. 

"첫 번째 과외,

기타 배우기"

벌써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심하게 밑에 괄호를 쳤다.

한 단어를 더 넣어보았다.

"홍대에서 버스킹하기"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줄 관객이 있다면야... ^^

몇 천 명씩 몰고다니는 버스커버스커가 부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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