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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Dec 09. 2022

‘아아’나 마시라고요?

어느 프리랜서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 누워 하루의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와중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아,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그러다가 얼른 이불을 걷고서 커피 타러 주방으로 나간다. 각성의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졸리고 지친 하루를 시작하는 데 커피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누군가는 커피를 많이 마시면 몸에 좋지 않다고도 하고, 불면증이 생겨 다음날을 망칠 수도 있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하지만 사실 나에게는 아직 불면증의 고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실수로 1리터 커피를 주문했던 날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아차’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커피가 내게 주는 효능은 아직 긍정적인 면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커피 주문받기 참 쉬운 것 같아요. 커피 쏜다고 했을 때 다들 ‘아아’를 외치더라고요. 제가 있던 곳에서는 다들 자신만의 커피 취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커피 쏜다고 하면 어찌나 복잡하고 머리 아프던지요. 어느 게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아닐까 싶기는 해요.”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아아를 외치고 가끔 다른 커피를 마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흠칫 쳐다본다. 그러면서 조금 특별하게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까다롭게 그러지 말고 아아 마시지, 뭐 그리 복잡하게 주문해. 커피에 대해서 잘 아나 봐.”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며 지적하는 사람에게도, 취향이 까다롭다며 구시렁거리는 사람에게도 정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내가 무엇을 마시든, 어떻게 마시든 간섭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그러한 사람과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휘몰아친다. 나의 취향을 존중해준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나 간섭할 일이란 말인가.      


사실 존중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존재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행동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개개인의 존재하는 방식을 너그러이 수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개인은 더없이 주관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경험은 자신만의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존중은 배려와 연결 지을 수 있다. 행동 방식, 언어, 감정, 의미 등을 고유하다고 인정함으로써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 마시는 걸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러려니, 그의 취향이려니 하면 될 텐데 간섭쟁이들 때문에 미주알고주알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의 취향을 고수할 것이며 나의 방식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여러 명이서 커피를 주문하러 갔을 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화이트 초콜릿 모카 프라푸치노로 주시는데, 디카페인으로 해서 휘핑크림은 빼고 주세요.”     


아, 그런데 얼핏 내가 봐도 까다로워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난 이렇게 마실 때가 제일 맛있더라. 충분히 나만의 방식을 고수할 이유가 있으니까. 왜냐하면 나의 취향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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