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문장들
시작은 창대했다. 이 세상 모든 프리랜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정성스레 쓰고 싶었다. 취재도 하고 싶었고 해야 했다. 다른 프리랜서들의 유쾌발랄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에도 버거웠다. 아픔의 영혼은 짓이겨가고 있었다.
프리랜서의 삶, 3년 차에서 매듭지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 힘겨움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공허, 두려움, 절망, 고통, 아픔, 죽음의 삶’ 1년 차가 시작되었다.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도 못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마음의 병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지 못했다. 모두들 무지하기 때문에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었다.
바짝 시들어버린 화초마냥 쪼그라들어 갔다. 우울증은 보너스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우울증인지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어,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난 참으로 밝고 쾌활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는데. 며칠 전만 해도 새파랗다 못해 거기에 낙서하고 싶어지는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보며 즐거워했고, 푸르르다 못해 무지개라도 하나 그려놓고 싶은 뒷산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는데. 어스름이 자욱하게 깔리는 저녁 6시보다 어둠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여명의 기운이 가득한 새벽 6시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단 말이다. 그런데 아픔은 두 배가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아니, 세 배였던가. 네 배였던가. 숫자를 카운팅하지도 못하겠다. 회색 안개 같은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엄습할까 봐. 이것이 트라우마인가.
증상이 심할 때가 있었다. 언제는 심하지 않았냐만은 지금 돌이켜보면 심했던 것이겠지.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어느 시점의 시간에 눈을 뜨기는 했다. ‘세수를 해야지, 맞다, 세수.’ 그런데 몸을 일으킬 최소한의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세수는커녕 양치조차 사치였다. 그나마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칭찬한다. 살 의지는 이 한 알의 모래 같은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오른쪽 팔을 들고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서 거울과 마주 설 힘이 아닌 용기조차 들지 않았다.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옆구리를 대고서 누워만 있었다. 누워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어제도, 그제도 보았던 같은 벽을 오늘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나는 누워 있는 것일까, 죽어가는 것일까. 가까스로 몸을 돌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이 왜 그렇게도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냥 보는 것도 아니고 의지를 담아 올려다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의 천장인데. 눈이 부시도록 쨍한 빛을 내는 형광등 하나 달려 있을 뿐인 천장인데, 오늘의 천장은 어제의 천장과 달랐다. 형광등이 부서지면서 단도가 나에게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기분에 휩싸였는데 자리를 뜨지도 못했다. 그냥 내리꽂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가득찼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어느새 ‘그냥 내려꽂혔으면 좋겠다’라는 자초자기의 심정으로 돌변해 있었다. 삶을 한 움큼 움켜쥐지도 못하는 감정이 이렇게나 두려운 것이었단 말인가.
부정적인 기운이 시나브로 그 백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결국 스마트폰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도 했다. 이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지 상태였던 천장은 더욱 탁해져 갔다. 이렇게 살 수만은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고, 내가 돌보아야 할 고양이들도 있었다. 내가 사라지면 이 아이들도 사라지는 것이리라. 그렇게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어야 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꾸역꾸역 건져올려야 했다. 나도 그렇고 고양이들도 그렇고 먹고살아야 했다.
팬데믹이 세상을 휘감으면서 이러한 고통은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출판사에서 편집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팬데믹은 병만 안기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고통이라는 그림자까지 드리웠다. 매출이 급감했다. 인원 감축이라는 청천벽력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저히 부하직원들을 내보낼 수 없었다. 저 친구들은 아직 편집자라는 타이틀조차 제대로 달지 않은 것 같은데 엄동설한에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내쫓는 것만 같았다. 살이 에이는 듯한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다. 결국 내가 나간다고 했다. 부하직원들은 그대로 품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나의 오판이었을지도 모른다. 괜한 오지랖은 아니었을까. 누가 나간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나는 정의의 사도를 자처했을까 하는 후회가 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하튼 나는 당시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이후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먹고살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외주 편집일도 하고, 틈틈이 번역도 했다. 온오프라인 강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터넷 라디오 DJ 일까지 따냈다. 겉으로는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계약직이나 파견직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래서 그리도 목숨을 걸고 정규직을 위해 사자후를 내뱉는 것이었단 말인가. 이제라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 프리랜서가 있었다. 프로젝트만 끝나면 바로 굿바이해야 하는 프리랜서. 분명히 업계에서 통용되는 단가가 있는데 다음 일을 더 주겠다는 이유로 계약서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말이 좋아 ‘프리’지 영혼까지 다 ‘프리’하게 팔아넘기지 않으면 일거리를 따낼 수가 없는 프리랜서. 4대 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아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뭐든지 후려치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다. 일이든, 돈이든.
그러다 보니 미래를 향한 불안감이 켜켜이 쌓여만 갔다. 한 꺼풀, 두 꺼풀. 지금이라도 소심하기 그지없는 A형에 INFJ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애써 둘러대고 싶다. 잉여 인간으로 치부될까 봐 겁이 났다. 내 안의 목소리는 자꾸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책을 아홉 권이나 출판하고 번역도 여러 권 한 것은 나의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가수 김윤아의 노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정확하게 내 심정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이 힘겹다 못해 힘에 부쳤다. 그렇지만 살아야 했다. 아니 살아내야 했다. 불안감의 결과로 나타난 강박장애가 온몸을 휘감다 못해 휘몰아치더라도 그 사이를 뚫고 나아가야 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의 침투사고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서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매일 나보다 더 고통받고 힘들지만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모습을 유튜브로 보며 나를 다독여나갔다. 이제는 차마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지 않는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렇게 살겠다는 의지가 눈곱만큼이라도 붙어 있음에 감사했다.
사실 프리랜서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다는 모습에 쉽게 매료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유’ 뒤에 숨어 있는 ‘책임’을 떠올려볼 때 쉽지 않은 삶임에 틀림없다. 회사와 직원을 ‘갑을 관계’라 칭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프리랜서들은 그 ‘을’들과 일하는 ‘병’이거나 ‘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쓰며 밝은 모습으로만 포장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프리랜서로 살며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으니까.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책은 팬데믹이 몰아치던 중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나’라고 하는 어느 편집장의 숨막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책이란 자고로 긍정적이고도 밝은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글들도 몇몇 엿보인다. 읽는 이에게 미안한 감정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지만 단순히 ‘예민한’ 프리랜서의 삶이라며 애써 미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강박장애나 우울증을 ‘예민하다’라고 포장하는 책들을 읽으며 화가 치밀어오른 적이 있다. 단순히 ‘예민하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든데 ‘예민하다’라고 치부해버리다니….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건강할 때도 쉽지 않은데 마음의 병을 품게 되니 더욱 쉽지 않다.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을 넘어 발악으로까지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주위에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은 내가 이겨내야 한다.
프리랜서의 삶.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어찌 하다 보니 사족처럼 마음의 병이 몰아친 이야기까지 덧붙이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다시금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으려나 하는 생각마저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번에 이 일을 계기로 신경정신과를 처음 찾았는데 무슨 사람이 그리 많은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음에 다시금 놀랐다. 그만큼 마음의 병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TV와 SNS에는 행복에 푹 빠져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와글와글한데 말이다. 세상은 역시나 빛과 그림자가 공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독 프리랜서로서 나의 모습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프리랜서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 그러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더욱 큰 아픔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로 수두룩하다.
그렇기에 솔직한 심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강박 및 우울로 힘겨워하는 프리랜서, 이를 넘어 현대인에게 조금이나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썼다. 곁에서 두 손 꼬옥 잡고 경청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글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뇌를 붙들어매고 싶을 정도였는데 누군가에게는 분명 기쁨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 앞섰기에 서툴게나마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아진 글이니만큼 나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 살포시 가 닿기를 바란다.
당신은 아프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