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키지도 못할 약속의 남발

"다음에 보자"는 말은 "다음에 안 봐도 돼"와 동의어

by Jeremy

졸업 이후 교류가 거의 없던 대학 친구에게서

깨톡이 도착했다.

휴대폰에 전화번호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장난스러운 깨톡명이 적혀 있었는데 내용은 좀 당황스러웠다.


'@@@ 모친 별세.

장례식장 XX병원 영안실.

발인 A월 B일'


얼른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금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깨톡명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없어 결국 다시 물어봐야겠다.


'저, 누구신지요.'

.

.

.

꽤나 마음이 심란했는지, 아니면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었는지,

2~3시간 후 답변이 왔다.


'나야 나. ZZZ. 야, 섭섭하다.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날 올 수 있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무턱대고 안 간다고 하기에도 참 뭣한 상황이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안부조차 묻지 않던 사이인데,

정말 이 기회로 나를 다시 만나 그간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바빴을 테니, 녀석은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

지극히 트리플 A형이었다면,

가슴에 담아둘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굳이 가지 못할 거 같은 상황에 애써

"가겠다"며 약속을 남발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현대 사회는

의미 없는 약속을 너무 남발한다.


갑작스레 문자를 보내고서는

'언제 시간 되면 저녁이나 안 되면 술이나 한잔 하자'라며

약속을 정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 같지 않은 약속을 하고서 만나는 사람 없더라.


그래서 난 약속을 정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시간 되면 보자는 이야기에,

'오늘 저녁 어때?'

'... 오늘은 좀 바쁜데.'

'난 내일도 괜찮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건데 어떻게든 맞출게.'

'그래, 그럼 내일 저녁 7시, SS에서 보자.'

라며 쐐기를 박는다.


사실 상대는 지극히 당황해한다.

그냥 흘려보내는 말로 던진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덜컥 약속을 정확하게 잡아버리니.


하지만 굳이 당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정확하게 시간을 정해

만나자고 요청하지 않는다.


그냥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고 싶어서

무리한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거다.


북송시대 대학자 장사숙은 약속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자기가 입에 올린 말이면,
그 말에 충실하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열성과 진실로써
약속한 일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쉽게 내뱉는 오늘날,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은 더없이 크지 않은가.


20대에는 약속을 쉽게 넘기고

약속에 늦기 일쑤였던 거 같다.

코리안 타임이 그냥 일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본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불혹을 앞두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낮게 숙이게 된다.


가벼워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다.

젊었을 때야, 어리니까 다 용서된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 주책없다,라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다.


모든 일에 조심스러워지고,

모든 일에 쉽게 나서지 못하게 되는

그런 때를 관통하고 있다.


젊어서는 열정과 패기로 젖어있지만,
나이가 들면 지혜와 인내가 젖어 드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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