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트렌드세터가 찾는 플리마켓은 벼룩시장과 다르다

나의 패션, 나의 감성, 나의 트렌드 20대에 결코 밀리지 않아!

by Jeremy

- 자기 집 차고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내다파는 데서 유래한 거라지 세일(garage sale).

- 뒷마당에서 제품들을 물물교환하거나 판매하는 야드 세일(yard sale).

- 이사 갈 때 불필요한 물건들을 처분하는 무빙 세일(moving sale).

- 거라지 세일과 비슷하지만 고가구나 특정 물건들을 판매하거나 경매로 부치는 이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

- 잡동사니를 판매한다는 뜻을 지닌 점블 세일(jumble sale).

- 판매할 물건을 차에 싣고 나와 판매하는 카 부트 세일(car boot sale).

- 자선행사를 위한 채러티 세일(charity sale).


미국은 워낙 물가가 비싸서 그런지 세일이라는 태그(tag)를 단 온갖 플리마켓(flea market)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패션과 문화, 아트의 중심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 온갖 플리마켓은 심지어 그럴 듯해 보인다.


10년 넘게 입은 헤진 니트, 다리 한쪽이 부러져 수리에 들어간 바비 인형, 모서리가 낡아 당장 버려도 될 것만 같은 앤티크 가구까지 빈티지(vintage)라는 이름을 덧씌운 채 당당히 거리로 나선다. 새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주말, 메이플 시럽이 흥건하게 흐르는 팬케이크에 에그 스크램블을 더하고 여기에 칼로리 제로에 도전하는 더블 샷 아메리카노로 마무리한 아메리칸 스타일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 전 잠시 들른 카페에서 주문한 캐러멜 마키아또를 오른손에 든 채 플리마켓을 지나면 엣지마저 가득해 보인다. 왠지 배경음악으로 스팅이 부른 ‘Englishman in New York’이나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마저 흐른다면 더없이 완벽하다.

$1 입장료를 받는 맨해튼의 아넥스 앤티크 페어&플리마켓.

일요일 오후를 완벽하게 해줄 그린 플리마켓.

다양한 잡화로 당신의 눈을 호강시켜줄 소호 앤티크 플리&컬렉티블스 등.

무한정 쇼핑 때문에 인생마저 거덜 ‘날 뻔한’ 여주인공 레베카 블룸우드가 새 인생을 꿈꾸며 자신의 옷을 모두 내다파는 영화 <쇼퍼홀릭> 속 한 장면이 뉴요커들에게는 친밀하겠으나 대한민국 서울 시티즌에게는 먼 나라마냥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세계 문화와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신상 천국만을 외칠 법한 이곳에도 중고 문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양한 ‘세일’이라는 이름이 아닌, 애초부터 ‘플리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안착한 것이다.



플리마켓 파라다이스


동네 아주머니들이 십시일반 모여 나라사랑 가족 사랑을 외치던 ‘아나바다 운동’이 스타일리시하게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여겨도 무리는 없을 터. 홍대 놀이터에서는 인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주말마다 내다팔기 시작했고, 강남은 가로수길과 서래마을 그리고 도산공원 사거리에 안착한 모 복합 문화 공간을 통해 패셔너블한 셀러(seller)들을 대거 모집하며 플리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트렌드 센터 중 하나인 이태원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젊음이 모이는 곳에는 의례 플리마켓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서울의 한 단면이다.


핫 플리마켓에는 DJing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인디밴드의 연주가 퍼져나가며, 셀레브러티가 자신의 컬렉션을 판매하느라 분주하다. 줄서서 입장하는, 전혀 새로운 문화현상이 슬금슬금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상이 한국에서는 트렌드가 되어버린 놀라운 모습을, 난 꼼꼼하게 즐긴다. 하비홀릭이라는 태그를 달고서.


쓸쓸함을 한껏 머금은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리더 크리스 마틴이 공연 중 자주 입으며, 꽃미남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스포츠 브랜드 저지 트레이닝복을 1만 원 이하 가격에 구입하고 싶을 때 매달 첫째 토요일 도산공원 사거리로 향한다. 월드컵 스페셜 에디션이 국가별로 즐비해 있고, 축구선수의 취향에 더없이 어울리는 버전도 좌판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난 이 옷이 너무 좋다. 눈에 보이기만 하면 흥정이고 뭐고 우선 집어들고 나서 생각한다. 어떻게든 셀러를 구워 삶아본다. 하나라도 더 사려고, 그것도 저렴하게. 보통 현금으로 5만 원을 지갑에 담아두면 2~3벌은 너끈히 꿰찰 수 있다. 물론 매번 이런 횡재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벌떼처럼 모여드는 인파를 뚫고서 아이템을 확실하게 손에 넣는 비법이 궁금한가? 2층 발코니에 올라 공간을 한번 둘러보고서 거침없이 진격한다.


간혹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야!’라며 짜증을 부리다보면 내 옆에 빈티지한 리바이스 청바지를 구입하려고 흥정 중인 연예인 OOO이나 XXX과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그들이라고 해서 초호화 명품만으로 휘감는 것은 아닌가보다. 플리마켓 의상도 명품으로 승화시키는 마법의 주문이 그들에게는 분명, 있다.


혹시 빈티지 아이템으로 내 방 좀 새롭게 디스플레이하려면 홍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재미, 쏠쏠하게 누려볼 것. 2002년부터 시작한 이곳은 자유를 추구하는 생활 창작 아티스트들로 왁자지껄하다. 티셔츠, 목걸이, 담배 케이스, 중고책 등이 판매 중이다. 강남과 달리 명품중고는 없지만 따듯한 영혼이 담긴 아티스트의 작품이 당신 품에 안길 채비를 마쳤다. 고르기만 하면 그만이다. 혜화동에서는 유기농 장터가 열리고, 명동 중심의 백화점에서는 도심형 플리마켓이 새롭게 태어났다. 실로 플리마켓 천국으로 치닫고 있다.



진짜 재미있다


사실 한국형 플리마켓은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아트를 담아내고 패션을 그려냈으며 트렌드를 녹여냈다. 미국형 플리마켓과는 차별점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즐기고 어울리는 문화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컬처 노마드(culture nomad)여서인지 이곳을 찾는 데 설렘부터 가득하다. 나라는 사람은.


먼저 인터넷 서칭을 통해 어떤 플리마켓이 주말에 오픈하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그리고는 충동구매 금지를 외치며 5만 원만 지갑에 담아둔다. 그리고 마음껏 즐긴다. 맥주도 마시고 가끔 소시지도 한 손에 들고서 터벅터벅 둘러본다. 꽉 찬 인파라면 좀 더 전투적이겠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을 찾는다면 금상첨화,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곳을 홀로 찾더라도 문제는 없다. 이미 수없이 홀로 찾았으니 노하우마저 생겼다.


‘느낌 아니까!’


친구와 방문하면 쏠쏠한 디테일을 전수한다. 친구 녀석 아이템 하나 제대로 건졌다고 함박 미소 짓고 나오면 맥주나 한 잔 쏘라고 거들먹거린다.


여자 친구와 출입했다면 손 꼭 잡고 둘러보는 재미 덕에 그녀의 얼굴에 하트가 무한정 그려진다. 밥, 영화, 커피 / 영화, 밥, 커피 / 커피, 밥, 영화라는 순환공식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최근, 연예인 이름을 걸고서 오픈하는 플리마켓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효리는 결혼하기 전 자신의 명품들을 구입가 10%에 내놓는다며 파격선언을 했다. 모 방송을 통해 데프콘은 플리마켓을 진행하겠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참여하는 연예인들도 팬들과 함께 나눔의 의미도 찾고 인기도 재확인한다.


‘아, 재미있다, 플리마켓!’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자 뚜벅뚜벅 찾아간 곳인 만큼 원 없이 누리다 오자.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니요, 시간을 무한정 뺏기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즐거움마저 선사하는 곳이다. 이번 주말도 방문하련다. 저지 트레이닝복을 또 구입할 시기가 다가왔으니까. 도산공원 사거리로 진격하련다. 5만 원으로 지갑도 두둑, 구입하고서 마음까지 두둑해지련다.


나는 플리마켓 전문가이자 빈티지 프로페셔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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