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는 걸어야 제맛이고, 슬픈 노래는 들어야 제맛이다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우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은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걷는 것은 죽음, 향수, 슬픔과 그리 멀지 않다. - <걷기예찬> 中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서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 시청 옆 정동길을 홀로 거닐었다. 생각보다 매섭진 않아도 행여나 서늘할까 옷깃을 바짝 세운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떼지어간다. 박자에 맞춰 척척 걸어 나아가는 개미군단처럼 자신만의 길을 따라 잘도 오간다.
춥다고 옷깃을 여몄으면서 커피잔을 든 손은 차갑지 않나보다. 뜨거운 음료라 그런 걸까? 짧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들은 춥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마저 괜스레 부려본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있어서인지 걷는 것도 혼자가 좋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자꾸 말을 걸어오면 약간이나마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나름 걷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표정을 읽는다고 해서 점쟁이처럼 떠억 하니 맞출 수도 없을 터인데 그들의 오늘은 어떨지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이 된 마냥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현대인은 걷기를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한다. 가장 기본적인 몸의 움직임일진대. 그러니 <걷기예찬>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출간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스테디로 인기를 끌지 않겠는가? 누군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했다.
가을에 책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BMW, 즉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ing)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잘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어떤가? 이해가 가는가?
왜 걸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할 일 없는 사람, 팔자 좋은 사람으로 오해할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은 대지의 정기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평온한 사람이다. 생각의 폭은 활짝 열리고 신체의 자세는 올곧아진다. 이에 대한 깊은 단상이 가을길을 차분하게 걷고 싶을 만큼 아로새겨진다.
돌담길을 스치듯 걸으며 양희은의 <꽃병>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생각나나요. 아주 오래전 그대. 내게 줬던 꽃병. 흐드러지게 핀 검붉은 장미를 가득 꽂은 꽃병. 우리 맘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바로 너겠구나.
온종일 턱을 괴고 바라보게 한 그대 닮은 꽃병.’ 양희은의 목소리는 사각거리며 밟히는 가을낙엽마냥 쓸쓸하고 담백하다. 이적이 쓴 가사는 낙엽을 즈려밟고 가는 단색 단화마냥 오래도록 겉멋이 없어 좋다. 풍경에 녹아든 노래가 절로 가슴을 쓰담쓰담거린다. 한번만 들으려 했던 노래가 무한반복으로 이어진다. 결국엔 열 번.
어느덧 회사 입구에 당도했다. 마지막 가사까지 남김없이 들으려 멈춰 섰다. 사람들은 점심시간에 맞춰 밀물처럼 나갔다가 그 시간이 끝나가자 썰물처럼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데 난 머뭇거린다.
뜻밖에 만난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걷는 것도 좋았는데 노래마저 너무 좋았다. 시계를 보니 1시 3분을 가리킨다. 걷는 발걸음이 어느새 뛰는 발걸음으로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