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아프다고 당당히 커밍아웃

강박장애는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작은 아픔입니다

by Jeremy


1. 공부를 잘하는 열두 살 소년, 모범생에 우등생이라며 주위에 칭찬이 가득하지만, 본인은 정작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성적이 떨어질까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다반사였고, 무엇이 불안한지 연신 머리카락도 배배 꼬아댄다. 직모에 가까운 머리가 곱슬머리가 될라.



2. 중학교 생활이 더없이 안정적인 열여덟 청소년, 무슨 일인지 연신 손을 씻어댄다. 하도 씻어서 살갗이 벗겨진 적도 있었다. 어딘가 못에 걸려 옷이 찢어질까 불안에 떨기도 했다.



3. 뮤지컬 배우로 열심히 활동하던 스물여덟 청년, 무대에 오르기 전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린다. 토할 것 같은 망상을 억누를 수가 없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것만 같은 그 무엇인가 내 몸 안의 불순물. 다행히 공연을 망친 적은 없어서 매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야 고해성사하련다.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다.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던 것일까. 성적, 친구 관계, 주위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 늘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강박이 불안으로 이어졌고, 외부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의학적으로는 특정 뇌세포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거나 항우울증 약이 효과가 있다거나 하면서 결론적인 의견만 넘쳐났다. 오히려 믿음이 가질 않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과정에 고민해야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십춘기에 접어든 지금도 다른 형태의 강박 장애로 고생하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염병도 아니고, 위험하지도 않으니까. 난 지금도 강박 장애라고 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커밍아웃하는 순간이다.




느닷없이 신호가 뇌에 떨어진다. 갑자기 손에 무엇인가가 묻은 듯한 기분이 감지된다. 바로 세면대로 달려가지는 않더라도 그 손으로 무엇인가를 집어들 수도 없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가 행여나 손에 묻어 있지도 않지만 묻어 있다고 나를 오해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바닥에 떨어질까 조심조심 세면대로 게걸음으로 간다. 잠깐이라도 손을 씻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기분 좋게 맛있는 밥 한 끼 잘 먹은 것 같은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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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현대인들이 강박 장애로 고생하다 못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이 매년 2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실제로 아파하는 사람은 그 몇 배에 이르겠지. 나 역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으니 잠재적 환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병은 우스갯소리쯤으로 치부당하기 일쑤다. ‘먹고 살만 하니 별 짓을 다 한다’라고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강박 장애는 소위 선진국병이라고 하니까. 그러다보니 숨길 수밖에 없다. 숨을 수밖에 없다. 내면의 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근다. 누구에게도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밝히지 못하고 외로워진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들어나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나의 바람이기도 하고, 모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해외 의사들은 환자의 하소연이나 아픔을 ‘경청’하며 눈높이를 맞추어준다. 그 정도만 되어도 얼마나 안도하고 마음이 편해질까 싶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나가고 있다. 무시하고 있다고 하면 맞으려나. 가끔은 강박의 정도를 일이나 취미에 연결시켜 이겨내고자 몸부림치기도 한다. 특정 단어나 문장에 강박이 쌓여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악기를 연습하는데 느낌이 잘 나오지 않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되고, 스스로도 찐득거리는 늪에 빠져들 듯 대책 없이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명확하다. 모든 병은 자신의 의지가 최우선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잎새를 바라보며 주인공이 병을 이겨내었고, 《뷰티풀 마인드》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 역시 아내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아픔을 덜어내어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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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거쉰, 고흐, 차이코프스키, 슈만, 버지니아 울프, 톨스토이, 존 키츠, 테네시 윌리엄스, 뉴턴, 미켈란젤로, 비비안 리, 랭보 등이 정신질환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했지만, 이는 결코 나약하다거나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깎아내릴 만한 중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 분야에서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아닐까. 인류를 감동시키고 뜨거운 열정으로 이끌어 역사에 반전을 창조해낸 천재들이 나와 같은 문제로 아파했다는 사실에 힘이 불끈 솟아오를 정도다.




비록 내가 천재는 아닐지언정,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조금 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즐거움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아픔은 나눌수록 반이 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힘들어하는 누군가와 공감하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줄 수 있다면 반이 다시 반으로 줄어들고 하다가 결국 사라지지 않을까.




세상 모든 일도 결국 이렇게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면 그러한 강박 장애가 어디 외출을 떠나는가 보다. 아무렇지 않으니 말이다. 쓰고 또 쓰고, 쓰고, 쓰고 지칠 때까지 쓰는 것이 나의 운명이 아니려나. 혹시 알고 보니 내가 천재 문학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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