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마주 대하는 아들의 분노 그리고 이해와 용서
솔직히 고백하건데, 난 아버지가 밉다.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걸 용서해야 할 텐데도, 난 아버지가 밉다.
온 나라가 어렵던 그 시절, 가족을 두고 떠나셨기 때문이다.
도망가셨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무게라 여기셨을 테지.
하지만 남겨진 자들의 무게는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것에 대한 생각만 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오순도순하진 않았어도,
꽤나 가족이라는 그림 안에서 살아갔을 테지.
난 그림의 저 모습처럼 아버지의 다리를 베고 누운 적이 있었을까?
전혀 없다. 단언컨데, 없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가 밉다.
그만큼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였다.
그 거리감을 좁히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나 힘들다.
어릴 적,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아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셨고,
학교까지 간간히 태워주신 적은 있다.
하지만 부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없었다.
눈 한번 마주칠 시간도 없었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용기도 없었다.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윤제균 감독,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주연의 <국제시장>도
우리네 아버지를 다루며 눈물짓게 한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미움과 화가 뒤엉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한데,
여전히 그러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한번도 보내지 않았던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다.
"아들아,날씨가추운데건강관리잘해?"
서른여덟 해만에 받아보는 문자.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성의없어 보이는 문자였지만,
그 자체로 성의가 뼛속까지 느껴졌다.
아버지는 자식과 소통하는 걸 두려워하는 분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속은 달달한 서울 남자가 되고 싶었던 분이었다.
성적 떨어졌다고 툴툴거리는 분이시지만, 혹시나 제 잘못인가 싶어 안쓰러워하신 분이셨다.
그런 여러 것들이 켜켜이 쌓여 눈물을 자아낸다.
하지만, 나도 여전히 불효자인가보다.
그때뿐이었다.
눈물도 그때뿐이었다.
잘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이었다가,
이제 전화는 뜸해지고, 겨우 당도한 목소리에 짜증을 섞어 내뱉는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제발 그러지 말아야.
그 바람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가지는 못하지만,
수화기 주위를 감싸고 돌고는 있다.
오늘도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간 나면 밥 한끼 하자. 바쁘면 할 수 없고."
어머니와 함께 살지 못한지 10여 년이 흐른 남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주저스러웠다.
머뭇머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