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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이시너드클럽 Apr 08. 2019

아버지의 치매: 그는 항상 답을 정해두고 내게 물었다

우리는 이별을 준비 중이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을 알게 된 건 2018년 여름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다. 낯선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가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어색한 타이밍이었다.


누나의 전화. 아버지가 같은 말을 반복하셔. 꽤 심해. 최근 일은 아예 기억 못 할 정도니까.


사실 앞서 엄마와 같은 내용으로 통화를 했다. 엄마는 항상 걱정이 앞서니까. 이번에도 호들갑이겠거니. 엄마는 항상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설명을 잘 못하니까. 가볍지 않은 걸 알았지만 애써 가볍게 넘긴 통화였다.


추석, 집에 내려가 미뤄둔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체중을 반쯤 덜어낸 아버지는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수택동 집에서 오냐, 물었다. 우리는 3년 전 새 동네로 이사를 왔다. 20년 이상 살았던 동네에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트럭 키가 어딨지, 다시 물었다. 10여년 전 아버지 지인에 싸게 처분한 차다. 그후로 아버지는 차를 몰지 않았다. 아버지 기억 속에 아버지는 여전히 그 집에 살고 그 차를 몰고 있었다.


아버지가 친구 따라 과일 장사를 하기 위해 산 트럭이었다. 평생 수완이 없던 아버지. 아버지가 미웠다. 장사가 안 되는 건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트럭 사기 전,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미 답을 정해두고 내게 물었다. 택시 운전을 할까 장사를 할까. 택시 운전이 어떻겠냐 권하던 내게 아버지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집 앞에서 낯선 트럭을 발견한 건 며칠 후다.


이제 트럭은 없다. 아버지에게는 트럭 팔고난 이후의 기억이 없다.


자는 시간 외에는 술을 드시던 아버지. 단순히 알코올성 치맨 줄만 알았던 증상이 간 때문이라고 확인한 건 2019년 3월이다. 어찌됐건 술이었다. 또다시 어색한 타이밍에 전화를 건 엄마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고 간경화 진단을 받았고 간이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달 새 아버지 병세는 손도 못 될 만큼 악화됐다.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가 77%의 확률로 3개월 이내 숨을 거둘 수 있다 했다. 간이식은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


77%. 차가운 숫자. 누나가 울었다. 너무 차가워 차가운 게 진짜 내 살에 닿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실감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 또다시 어색한 타이밍에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면, 바로 그때가. 이번에도 아버지는 답을 정해두고 내게 물을 것이다.


종원아, 내가 너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니.


25년 전, 누나와 함께 아빠가 사준 위너스버거와 밀크쉐이크를 먹고 즐거워하던 나,

10여년 전, 택시 운전하면 안되나며 화를 내던 나,

1년 전, 술담배에 전 아버지의 삶을 나 또한 포기하겠다고 소리치던 나.

.

.

.


아마 내 대답은 그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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