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 글은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어른이 될 순 없어도 추한 어른이 되지 않을 순 있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죠. 쓰고 보니 쉬운 것만은 아니군요.
어렸을 적 일면식도 없는 ‘추한’ 어른이 한 말을 아직도 어깨 한쪽에 이고 사는 나로서는 삶의 지침 같은 문장입니다. 그저 나는 길을 나섰을 뿐이고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 중년 여성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문장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말이 얼마나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 아시나요. 우리가 마주친 건 단지 3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다고요.
내 생각을 글로 잘 풀어내고 싶은 맘에 여러 에세이를 챙겨보고 있는데요, 결국 드는 생각은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괜찮은 글을 쓰기 위해선 바른 태도를 지녀야한다고요. 물론, 화려한 수사로 남을 속일 순 있겠지만, 문장이 늘수록 본질은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모험담처럼 풀어낸 추한 행동을 웃음으로 넘기기에 누군가에게 그 행동은 너무 쓰립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이자면 바른 생각은 착한 생각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무례함은 누군가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내는 의문의 눈빛, 불쾌한 농담, 무례한 질문, 신경질적인 제스쳐, 무거운 한숨, 심지어 의미 없는 웃음까지도요.
그저 삶의 일부라고 하고 넘기기에 우린 너무 나약합니다.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는지.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하고 자신이 왜 상처를 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지금도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면 가끔 이렇게 얘기하곤 합니다. 우리 완벽한 어른이 될 순 없겠지만 추한 어른이 되진 말자고요.
물론, 이 글은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