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조용한 균열

팀장_Part 1. 문제는 결국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었다.

by 직장인C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침식은 항상 조용하게 시작된다.”


J에게 처음 가졌던 인상은 ‘밝다’, ‘성실하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인다’였다.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그런 단어들로 설명되었고, 그래서 나는 경계를 풀었다.

어떤 조직에서든 ‘적극적인 사람’은 필요하다.
우리 팀에도 그런 활기가 조금은 필요했고, 나는 J가 그 공백을 채울 거라 기대했다.

L도, 다른 팀원들도, 모두 그녀를 괜찮은 선배라고 여겼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J는 팀원들에게 먼저 다가갔고, L에게는 특히 많이 말을 걸었다.

“점심 먹었어? 우리 같이 가자.”
“이거 내가 예전에 해봤던 방식인데, L도 한 번 써볼래?”
“우리 팀 분위기 좋다, 그치?”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좋은 선배가 들어왔네’라고 생각했다.
후배 입장에서도 안정감 있게 느껴질 것 같았고.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L이 J 옆자리에만 앉아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심 자리도 J의 선택에 따라 움직였고, 회의 전 잠깐 쉬는 시간에도 L은 늘 J가 있는 자리에 있었다.


원래 L은 밝고,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여기저기 섞여 앉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다른 팀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항상 J의 옆, 혹은 J의 맞은편, J가 앉은 테이블 위주로만 이동했다.


이 변화가 처음엔 자연스럽게 보였다.
새로운 선배가 들어오면 후배가 의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나는 뭔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L의 자리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었다.”


누가 먼저 자리를 정하고, 누가 그 흐름을 이끌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팀 전체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날, 나는 가볍게 물었다.


“오늘은 다 같이 먹을까? 분위기도 좋고.”

L이 대답하려던 찰나, J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대신 답했다.


“아, 저희는 먼저 내부적으로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둘이서 먹고 금방 돌아올게요.”

말 자체는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데 L의 표정이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헷갈린 표정’이었다.
감정이 닿지 않는, 텅 빈 눈동자.

나는 그 작은 흔들림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L은 다시는 다른 팀원들과 점심을 먹지 않았다.

내가 눈치챈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L의 말투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내가 어떤 작은 의견을 물어도
“아… 일단 J 선배한테 먼저 물어볼게요.”
이런 식으로 말을 끝냈다.


이전의 L이라면 상상도 못 할 답이었다.
L은 누구에게나 의견을 잘 말하던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답을 하려다가도 어딘가 뒤쪽을 확인하듯 시선을 흘끗 움직이고 난 뒤 말하기 시작했다.


그 시선의 흐름이 가리키는 곳... J였다.

나는 그때 처음 “이건 이상하다”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꼈다.


이젠 팀 내 자리 배치도 묘하게 바뀌었다.

J와 L은 같은 테이블을 공유했고,

어쩌다 둘 사이에 다른 팀원이 끼어 앉으면 J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바꾸도록 유도했다.


“여기 말고 저쪽 앉아도 되죠?”
“아, L이랑 정리하던 게 있어서요.”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말들.
하지만 묘하게 ‘나눠진 선’을 점점 더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마치 팀 전체를 보이지 않는 선으로 ‘J와 L의 테이블’과 ‘그 외 테이블’로 분리하듯.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선은 당연한 규칙처럼 굳어져 있었다.

이상한 건, 그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팀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도 아니었고, 둘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공기의 흐름, 사람들의 동선, 시선의 방향, 작은 대화 패턴이 어쩐지 기묘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조용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 J가 있었다.

그녀는 밝았고, 친절했고, 항상 ‘도와주는 척’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미소 아래 어떤 계획이 숨어 있다는 느낌은 분명 내 피부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단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까.
모든 건 ‘정상’이었으니까.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의 시작을 눈치채기 가장 어려운 이유라는 걸 나는 조금 뒤에야 깨닫게 된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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