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_Part 2. 미세한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
그녀의 성격이, 말투가, 태도가 무너지는 것처럼 급격히 바뀐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천천히, 너무 자연스럽게 변해서 그 변화가 더 섬뜩했다.
처음엔 단순한 피곤함이라고 생각했다. 업무가 많아지면 누구든 지칠 수 있다.
J도 신입 선배로서 L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었고, 그게 부담일 수도 있다고 넘겼다.
그러나 어느 날, 한 회의에서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L님, 의견 있어요?”
업무 회의를 하던 중 나는 L에게 의견을 물었다.
예전의 L이라면 긴장하면서도 밝게,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던 아이다.
그런데 그날은... L이 대답하기 전에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시선을 아주 짧게 왼쪽으로 흘렸다.
그 방향에는 J가 앉아 있었다.
L의 눈동자는 정확히 J의 표정을 ‘확인’했다.
마치 정답을 확인하는 학생처럼. 마치 허락을 구하는 사람처럼.
J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L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음... 아직 잘 모르겠어요. J님이 조금 더 설명해주셨고, 그... 그 내용으로 가도 좋을 것 같아서요.”
J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 L님이랑 잠깐 이야기했던 게 있어서요.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L님은 저랑 더 얘기해보고 답 줄게요.”
그 말 한마디에 회의 분위기는 멈칫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상황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
나만, 혼자서, 묘한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웃음이 팀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L은 웃음의 타이밍이 달라졌다.
예전엔 자연스러웠다면, 지금은 웃기지 않은 상황에도 억지로 미소를 붙이는 듯했다.
특히 회의 시간이나 내가 이야기할 때, L은 항상 어색한 미소를 유지했다.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웃음.
나는 그 웃음을 보면서 이건 ‘웃음’이 아니라 ‘방어기제’라는 걸 느꼈다.
그녀의 어깨는 더 움츠러들었고, 손은 자꾸 본인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L님, 괜찮아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을 때도
“아, 네. 그냥 요즘 조금 정신이 없어요.”
대답은 했지만 눈은 나를 보지 않았다.
점심뿐 아니라 퇴근 직전의 짧은 대화, 소소한 티타임, 서로 메시지 주고받는 빈도까지.
둘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건 이상하지 않다.
직장 선후배끼리 그러는 경우는 많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반대 방향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어느 순간 L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말을 걸 타이밍을 잃었다.
왜냐하면 L이 감정적으로 ‘접근 가능한 상태’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변화를 명확히 느꼈다.
L이 무언가 ‘지워지고 있다’는 느낌.
그녀의 존재가 뭔가 보이지 않는 선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
J의 주변에 모인 ‘조용한 공기’ 속에서 L은 점점 더 작은 소리가 되고 있었다.
어느 날 회의실에서 나는 문득 L이 나를 향해 보내는 ‘빠른 시선’을 잡았다.
도움이 필요한 듯한 눈빛, 뭔가를 말하고 싶은 얼굴.
하지만 그 시선이 나에게 닿는 순간, J의 시선이 L에게 동시에 꽂혔다.
그리고 L의 입술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닫혔다.
순간적인 눈빛의 변화.
뭔가를 말하려다가 꾹 삼켜버리는 행동.
그 작은 장면 하나가 온종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L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말을 막고 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요즘 어때요? 일이 너무 많으면 말해도 돼요.”
L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괜찮아요. J님이 많이 도와줘서요.”
“J님이요?”
“네.”
대답은 짧았고 말을 끝내는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 못해 ‘도망치듯’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답을 하고 난 뒤 L은 마치 누군가에게 ‘미리 말한 답’을 체크하듯
책상 아래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얼른 확인했다.
그 작은 행동 하나에 내 몸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리고 그날 오후, L이 조심스레 팀즈 메시지를 보내왔다.
"팀장님... 혹시 잠깐 시간 되세요?"
나는 즉시 답했다.
"당연하죠. 어디서 볼까요?"
그런데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3분이 지나도, 5분이 지나도.
나는 복도 끝에 있는 교육장 근처로 가봤다.
그곳에는 J와 L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J의 손은 L의 팔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고, 목소리는 낮고 순한 톤이었지만 표정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L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굳어 있는 표정.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멍한 표정. 말을 삼킨 사람의 얼굴.
나를 발견한 L은 순간적으로 눈이 흔들렸지만 금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J가 먼저 말했다.
“아, 팀장님. L이랑 잠깐 이야기 중이었어요.”
그 짧은 말 끝에 나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을 삼켰다.
L이 보낸 메시지. 그리고 곧 이어진 침묵. 그리고 지금 굳어 있는 표정. 너무 정확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도 L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직 몰랐다.
그 표정은 곡선이 아니라 ‘신호’였다는 걸.
도와달라는 신호.
빠져나올 수 없다는 신호.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J에게 깊숙이 길들여져가고 있다는 신호.
하지만 그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기까지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놓치게 된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