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조용한 균열

팀장_Part 3. 보이지 않는 선

by 직장인C

사무실 구조는 단순했다.

바깥쪽 라인에는 디자인팀, 가운데 라인에 J와 L이 속한 교육 콘텐츠 팀,

안쪽은 다른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팀.


처음에 나는 이 구조를 그저 “자리 배치”로만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배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디자인팀, 교육팀, 다른 파트 사람들이 그날그날 함께 내려가서 편하게 자리를 골랐다.

“오늘은 어디 갈까요?”
“아, 저쪽 식당 가죠.”
“저는 편의점 도시락 먹을게요. 먼저 내려가세요.”

이런 대화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J가 온 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미묘하게 ‘팀별 테이블’이 생겼다.

특히 J가 있는 테이블은 항상 구성원이 고정되어 있었다.

J, L, 그리고 J팀의 다른 멤버들. 그들은 늘 한 덩어리였다.


어느 날 나는 일부러 그 자리 옆 테이블에 앉아 멀리서 그들을 지켜봤다.

J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는다. L은 자연스럽게 J의 맞은편, 나머지 팀원들은 그 주변으로 채워진다.

다른 팀원이 그 사이에 끼어 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끼어들 여지가 애초에 없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머릿속으로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저 자리는 예약석이구나.”


문제는, 그 예약을 한 사람이 J라는 것,
그리고 누구도 그 예약을 깨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점심시간, 나는 일부러 L 쪽으로 먼저 다가갔다.

“L님, 오늘은 우리 쪽이랑 같이 먹을까요?”
그냥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예전의 L이라면 “좋아요!” 하고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L은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아주 짧은 정적.
그리고 그 정적 다음에, L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J를 향했다.

J는 그 순간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손에 쥔 컵을 한 번 천천히 돌렸다.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건지 알아서 잘 생각해봐.”


L은 재빨리 나를 향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입술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

“아... 오늘은 J님이랑 이야기 나눌 게 조금 있어서요. 죄송해요, 팀장님.”


결국 나는
“그래요? 알겠어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
라고 말하고 물러섰다.

말로만 보면 아무 문제도 없는 대화다.
누가 봐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현장에 서 있었던 나는 안다.
L의 대답은 선택이 아니라 반사 신경에 가까웠다는 것을.


점심 이후 사무실로 돌아오면 한동안 잡담이 오간다.

예전에는 디자인팀에서 웃음소리가 터지면 L도 고개를 내밀어 “무슨 얘기예요?” 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웃음소리가 나도 L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귀를 닫은 사람처럼 모니터만 조용히 바라봤다.


반대로, J와 L이 속한 책상 쪽에서 웃음이 터질 때면 그건 아주 높은 톤의... 조금은 과장된 웃음소리였다.

“아, 진짜요? 대박이네요!”
L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내 자리에서 바라본 L의 옆모습은 웃는 입모양과 어울리지 않게 눈 주변이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

웃음의 소리는 J 쪽을 향해 있었고, 감정은 그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작은 회의를 열었다. 단순히 진행 중인 업무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부러 L에게 말을 자주 걸었다.

“L님, 이 부분은 현장 입장에서 보면 어때요?”
“L님이 보기엔 문구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때요?”

L은 항상 같은 패턴으로 대답했다.

“음..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J님이 말씀하신 방향으로 더 다듬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말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대답은 ‘내 생각’이 아니라 ‘안전한 답변’이라는 걸.


회의가 끝날 무렵, 나는 일부러 던졌다.

“L님, 혹시 요즘 힘든 거 있어요?”

방 안의 공기가 잠깐 고였다.
J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L에게 향했다.

L은 딱 1초 동안 입술을 깨물었다가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하면 나아질 것 같아요.”


그 답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힘들다”라는 말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람의 말투였다.


우리 팀에는 업무용 팀즈 채팅방과 팀원들끼리의 카카오톡 단체방이 있었다.

업무방은 늘 보던 그 흐름이었지만, 단체방은 점점 J의 목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늘 다들 고생했어요. L님, 아까 그 자료 정리한 거 진짜 좋았어요!”

“JD님, 다음엔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어때요? 제가 예전에 하던 방식인데,

큰 회사에서 되게 좋아하던 스타일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일반적인 선배의 피드백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메시지의 방향이 달라졌다.

칭찬인 듯 시작해 은근히 비교하고, 감사인 듯 말하면서 조용히 빚을 지우는 식이었다.

“L님 덕분에 내가 살았어요.”
“팀장님은 요즘 많이 바쁘셔서 우리가 더 챙겨야 해요.”
“우리끼리라도 끝까지 버텨봐요.”

직접적인 나쁜 말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문장들은 읽는 이의 마음 안에 작은 구분선을 하나씩 그어 놓는다.

“우리는 한 편이다.”

“우리가 아니면, 여기 아무도 우리를 모른다.”


그 구분선에서 팀장라는 존재는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가끔 퇴근 직전, 나는 일부러 팀 근처를 서성이며 분위기를 살폈다.

J와 팀원들은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L님, 오늘 표정 안 좋던데, 내가 괴롭혀서 그런가?”

“아니에요, J님. 제가 더 잘해야죠.”

그 말에 다 같이 웃는다.

그 웃음 속에 내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상한 건, 아예 언급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비켜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마치 내 존재를 ‘불러내지 않는 것’ 자체가
그들만의 룰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룰을 만든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점의 나는 아직 “J가 나쁘다”고 단정하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L은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립은 실수나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향성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가 아니라
“지금 이게 정말 문제인 게 맞나?”라는 지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 생각하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그때 나는 이미 분명한 이상 신호들을 보고 있었는데도 아직도 그 모든 걸

“조금 예민하게 느끼는 나의 문제”라고 스스로 축소하고 있었다.


그 사이, L의 세계는 더 좁아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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