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금이 가기 시작한 왕국

J_Part 2. 내가 정한 거리가 너의 세계야

by 직장인C

요즘 L의 표정은 조금씩 더 흐릿해지고 있다.


그 눈빛 속에 깃든 불안, 말을 고르기 전 잠깐 멈칫하는 호흡,

밥을 먹으러 갈 때 표정을 살짝 엎어뜨리는 버릇.


그런 변화들은 내가 L의 중심축을 천천히 흔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누군가의 기준점으로 살아갈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기준점을 ‘나’로 만들어두면 그 사람의 세계는 절대로 나 없이 돌아갈 수 없게 된다.

L은 이미 그 단계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자연스럽게 L을 불러내 말했다.

“팀장님이 L님을 요즘 자주 부르더라고요? 어휴... L님 힘들겠다.”

L의 눈이 잠깐 흔들린다.


“아... 아닙니다, J님. 그런 건...”

“모르는 소리. 팀장님이 L님한테 유난히 기준이 높잖아요. 사실 나도 좀 걱정이 돼.
L님 한테 너무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L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여기서 바로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조종은 밀고 당기기, 불안과 안심의 반복이다.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근데 뭐, L님이니까 버티는 거지. 솔직히 JD나 H였으면 벌써 무너졌을걸요?”

L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 ‘안심의 숨결’ 하나면 L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온다.


고립은 직접적으로 만들면 티가 난다.

나는 티 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티가 나면 반발이 생기고, 반발이 생기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방식을 택했다.


“식사 자리의 조정”


팀 분위기는 식사자리에서 결정된다.
사람들의 관계도 그 안에서 형성되고, 공감도, 정서적 지지도 모두 그 자리에서 생긴다.

그래서 나는 L에게 자연스럽게 말했다.


“점심은 우리끼리 먹어요. 요즘은... 다른 팀이랑 너무 섞이지 않는 게 좋아요.”

처음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사소한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아, 그리고 다른팀 사람하고는 가능하면 말 섞지 마. 오해 생기면 L팀이 다쳐요. 아직 어리니까 조심해야지.”

숨겨진 뜻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행동을 제한하게 된다.


그리고 L은 정확히 그 흐름대로 움직였다.

어느 순간부터 점심시간이 되면 L은 자연스럽게 나와 JD, H 옆에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제 네 중심은 나야.


조직을 장악하려면 항상 ‘소리 없이 따르는 사람’이 필요하다.

JD는 그런 사람 중에서도 최고였다.

적당히 불만이 많고, 적당히 인정욕구가 강하고, 적당히 누군가의 기준에 기대고 싶어 하는 유형.

이런 사람은 ‘내가 너를 이해한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평생 내 편이 된다.

나는 JD에게 종종 말했다.


“JD님은 능력이 있는데 인정 못 받는 거예요.”
“팀장님이 JD님을 제대로 못 봐서 그렇지.”
“우리끼리 하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아요?”


그 말은 JD에게 너무 달콤했던 것 같다.

H는 그 반대였다. 말이 많지 않고,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이런 사람은 내 표정 하나만으로도 움직인다.

두 유형이 조합되면 조직 장악은 아주 쉬워진다.


L을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든 후 다음 단계는 팀장이었다.

직접 공격할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티가 난다.

나는 이따금씩, 아주 사소한 흠 하나를 슬쩍 던졌다.


“오늘 팀장님 지시 좀 애매하지 않았어?”
“왜 저런 방식으로 하시지?”
“나는 잘 모르겠네. 판단이 너무 느리신 것 같기도 하고.”


이 말들은 하나만 들으면 별 의미 없다.
하지만 계속 들으면 사람은 ‘의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JD가 내 앞에서 말했다.

“J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팀장님, 요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 않나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 돼요. 팀장님도 사정이 있겠죠.”


하지만 JD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

내가 원하는 결론을.


그러나 이상한 일이 생겼다.

L을 챙기던 팀장의 방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밝게 격려하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더 조심스럽고 더 세심하다.


마치 L 안에서 무너지는 기척을 팀장이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나는 L에게 물었다.


“팀장님이 요즘 L님한테 의견 많이 묻지 않아요?”

L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두면 안 되겠군.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팀장이 L에게 손을 뻗는 순간,

그 손목을 꺾어 버리면 된다.


-To be continue-

keyword
작가의 이전글3장. 금이 가기 시작한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