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Part 1. 균열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정리하고 싶었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팀장은 여전히 나를 불렀고, 여전히 존중하는 말투를 썼다.
“J님 의견은 어떠세요?”
회의에서 그 한 문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 위치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의 무게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 말 한마디로 회의의 방향이 정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모두가 그쪽으로 움직였고,
내가 망설이면 팀장도 잠시 멈췄다.
요즘은 아니었다.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팀장이 L을 바라보는 순간이 생겼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시선을 주는 장면.
그건 아주 짧았고, 누군가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이런 기류에 예민한 사람이니까.
L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고개를 숙였고,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말의 속도가 달랐다.
예전처럼 나를 먼저 확인하지 않았다.
보고를 할 때, 예전엔 내 표정을 한 번 훑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지금은 팀장을 보고 있었다.
그게 처음 느껴진 날, 나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돌렸다.
‘우연이겠지.’
‘팀장이 잠깐 L을 본 거겠지.’
‘괜히 예민해진 거야.’
하지만 우연은 반복되지 않는다.
회의가 끝난 뒤, 팀장은 L을 따로 불렀다.
그 전에는 늘 나를 먼저 찾았는데.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나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하필 L이지?
왜 지금이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지금 반응하면 내가 예민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건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차분해야 했다.
늘 그랬듯이.
며칠 뒤, L이 팀장에게 직접 메신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팀장님, 이 부분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공손한 문장이었다.
문제 삼을 수 없을 만큼.
그런데도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이건 규칙의 문제였다.
보고는 위계를 따라야 한다.
그건 조직의 기본이다.
나는 그 규칙을 누구보다 잘 지켜왔다.
그래서 안전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팀장은 그 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나를 거치지 않고.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느꼈다.
누군가가 내가 쌓아 올린 질서의 가장자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건드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더 불길했던 건,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날 밤, L의 이름을 처음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변수’로 떠올렸다.
아직은 손에 쥐고 있다.
아직은.
하지만 미끄러지는 감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