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Part 5. 무릎은 말보다 먼저 접힌다.
그날 밤, 나는 휴대폰을 몇 번이나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달됐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는 요청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스스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 날 아침, L은 더 조용해져 있었다.
목소리는 더 낮았고, 웃음은 사라졌으며, 눈은 자주 바닥을 향했다.
회의 중에도 그녀는 내 쪽을 거의 보지 않았다.
대신 팀장의 반응을 훔쳐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게 중요했다.
팀장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누가 보호받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점점 밀려나고 있는지.
점심시간이 되자, L은 자연스럽게 우리 팀 테이블에 앉았다.
예전처럼 다른 팀원들과 섞이지도 않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반찬을 옮기며, 말수를 줄였다.
JD와 H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관망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자리라는 걸.
점심이 끝날 무렵, L이 먼저 입을 열었다.
“J님... 혹시 오늘 퇴근 전에 잠깐 이야기 가능하실까요?”
나는 놀란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그 말 하나에, L의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사람은 허락을 받는 순간, 이미 마음을 내려놓는다.
퇴근 시간.
사무실에는 몇 명만 남아 있었다.
나는 일부러 불을 다 끄지 않았다.
어둠보다는, 반쯤 밝은 공간이 더 불안을 키운다.
L은 회의실 근처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노크를 할 듯 말 듯, 손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결국,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내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L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 선택한 자세였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앞에 모은 채로 서 있었다.
“J님... 어제랑 오늘... 제 태도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마침내 그 말이 나왔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 짧은 침묵 동안, L의 호흡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셨어요?”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제가... 팀장님께 바로 보고드린 것도 그렇고,
J님께 먼저 말씀드리지 못한 점도... 경솔했던 것 같아요.”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L님.”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관계는... 다르죠.”
그 말에 L의 눈가가 붉어졌다.
“저는요, L님이 여기서 오래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나는 진심처럼 말했다.
“그래서 더 엄격하게 보는 걸 수도 있어요.”
엄격함이라는 말은, 폭력을 포장하는 데 가장 편리한 단어다.
L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부족해서 그래요. J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게 맞아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 이 아이는 자기 판단보다 내 해석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을.
“고개 드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거리도, 시선도 계산된 위치였다.
“다음부터는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먼저 생각나게 하세요. 그래야 L님도 덜 힘들어요.”
L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거의 끄덕였다.
그날 이후, 그녀는 매번 내 눈치를 먼저 살폈다.
보고 순서도, 말의 톤도, 메신저의 문장 하나까지.
사과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유지였다.
하지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팀장이 요즘, 나를 자주 보고 있다는 느낌.
회의 때의 시선, 점심시간의 미묘한 거리, 그리고 오늘 퇴근 무렵,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은 이유까지.
조금 빨랐나?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괜찮았다.
아직은.
다만,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할 사람의 목록에 팀장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