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Part 1. 빼앗긴 자리
사람들은 착각한다.
자리를 옮긴 사람이 떠난 거라고.
아니야.
떠난 게 아니라 빼앗긴 거지.
L이 다른 팀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 앞에서, 정확히는 팀장이라는 직책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은 자동으로 나왔다.
숨 쉬는 것처럼, 인사하는 것처럼.
팀장은 늘 그렇다.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고, 내게 남은 건 ‘이해하는 태도’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이해 하는 척하는 사람처럼.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시작하면 끝이 없어진다.
끝이 없어진다는 건, 통제력을 잃는다는 뜻이다.
내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업무 메일 몇 개가 와 있었고, 그중 하나는 L이 마지막으로 정리해둔 파일이었다.
파일명은 평소처럼 단정했다. 날짜, 프로젝트명, 버전. 역시. 끝까지 깔끔하다.
나는 그 파일을 열지 않았다.
대신 파일 위에 커서를 올려두고 잠시 멈췄다.
L은 떠났다. 아니, 떠나 보내졌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다른 문장이 따라왔다.
“내 허락 없이.”
이상했다.
L은 내 소유가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은 답을 부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주변을 살폈다.
JD는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H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둘 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L님 오늘부터 다른 팀이죠?”
JD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무렇지 않은 톤이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렇죠.”
나는 짧게 답했다. 그 짧은 한 음절에 감정을 담지 않기 위해서.
H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이동이네요.”
“회사가 필요하다고 했다네요.”
나는 ‘회사’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팀장이 아니라, 나도 아니라, 회사.
책임이 흩어지는 단어. 누구도 직접 지목되지 않는 단어.
JD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회사가 인력 이동 많죠.”
맞아. 그렇게 이해해.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 방 안에서, 이 책상들 사이에서, L이 사라진 이유는 그렇게 정리되어야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일부러 자리를 떴다.
화장실도 아니고, 회의도 아닌 애매한 시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점심 이야기를 시작하는 타이밍.
멀리서 웃음소리가 났다.
JD와 H의 목소리였다. L이 있을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 아니,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찌그러졌다.
그래. 이렇게 되는 거야.
사람은 빠지고, 구조는 남는다.
구조가 남아 있다는 건, 문제가 없었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게 제일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L이 있었을 때, L이 힘들었을 때, 아무도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다면.
그럼 결국, 불편했던 건 L 하나뿐이었다는 말이 되니까.
나는 손을 꽉 쥐었다가 풀었다.
손바닥에 자국이 남았다.
괜찮다.
이건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
팀장은 착각하고 있다.
L을 옮기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환경을 바꾸면, 사람이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사람은 환경에만 갇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기억에 갇힌다.
L은 떠났지만, 이야기는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떠났는지, 누가 그를 도와줬는지.
이야기는 정리되지 않으면, 반드시 왜곡된다.
그리고 왜곡은, 가장 먼저 그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의 몫이 된다.
나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팀장은 모르고 있다.
아직은. L이 빠진 이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비워진 자리가 아니라 되찾아야 할 자리라는 것을.
나는 모니터를 켜고, 새 메일을 작성했다.
수신자는 비워둔 채로 제목만 적었다.
"업무 정리 관련 공유"
아직 보내지 않는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기억을 정리할 시간이다.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누가 누구를 도왔는지.
누가 중심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L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만든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괜찮다.
아직은.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