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Part 2.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L이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 듯 행동했다.
회의 자리에서 L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고, 메신저에서도 그의 말투를 흉내 내는 농담은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나는 그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이렇게 잊힌다.
천천히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문제는 언제나 그 다음이다.
사라진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먼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들었다.
“L님 일할 땐 좀 예민하긴 했죠.”
회의가 끝난 뒤, 커피 머신 앞에서 JD가 툭 던지듯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한, 그래서 안전한 말.
“맞아요.그랬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조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톤.
“열정은 있었는데... 음, 방향이 좀.”
H가 말을 흐리며 덧붙였다.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할 수 있는 방식.
나는 그 침묵이 좋았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부분을 각자 가장 불편하지 않은 쪽으로 채운다.
“그래도 열심히 하긴 했죠.”
이번엔 내가 말했다.
긍정처럼 들리는 문장. 하지만 그래도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순간, 그건 이미 평가다.
JD가 웃었다.
“열심히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누구도 L을 비난하지 않았고, 누구도 옹호하지 않았다.
그 대신, L은 점점 ‘아쉬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날 오후,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JD와 H에게 간단한 업무 공유를 했다.
“L님 하던 자료 정리, 제가 다시 볼게요.”
“아, 네.”
JD가 대답했다. 조금 안도한 얼굴이었다.
“L님 스타일이랑 달라질 수 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걱정해주는 사람처럼.
“아무래도 기준이 정리가 안 된 상태였으니까요.”
기준...
이 단어는 마법 같다.
누군가를 무능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부족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H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중간중간 헷갈릴 때가 있긴 했어요.”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며칠 뒤, 팀장은 나를 불러 짧게 물었다.
“L님은 잘 적응하고 있대요?”
“네. 들리는 말로는요.”
나는 사실만 말했다.
아니, 사실처럼 들리는 말만.
“다행이네요.”
팀장은 안도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해결됐다고 믿고 싶어 한다.
문제가 ‘사람 이동’으로 정리되면, 그 안에 있던 감정과 시간, 상처는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착각한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L은 잘 적응할 것이다.
다만, 그 적응이 누구의 승리로 기록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오래된 메모를 열었다.
팀 초기에 정리해 두었던 업무 노트. L의 이름이 보였다.
첫 프로젝트, 첫 실수, 첫 칭찬.
그중 몇 줄에 표시를 했다.
의사소통 미흡, 기준 공유 필요, 피드백 반영 속도 느림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는 문장들.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전부라고 하기엔 애매한 문장들.
이런 문장들이 모이면, 하나의 인상이 된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한다.
내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나는 공격하지 않는다.
나는 배치한다.
말을, 시선을, 침묵을 적절한 자리에 놓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스스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그게 가장 완벽한 통제다.
L의 이야기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
아니, 떠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다음은, 이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틸 것인가.
나는 노트를 덮고 불을 껐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조용히 시작될 것이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