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변하지 않는 변화

J_Part 3. 기억은 이렇게 바뀐다.

by 직장인C

사람들은 기억을 기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편집된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말을 꺼내지 않아도, 말이 반복되는 방향만 정해지면

기억은 스스로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그걸 기다렸다.


“L님은... 음, 도움을 많이 받긴 했죠.”

이 말은 JD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누군가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 말을 붙잡지도 않았다.

그냥, 흘려보냈다. 하지만 흘려보내는 척한 말은 대개 가장 오래 남는다.


“맞아요.”

H가 조용히 덧붙였다.


“팀장님도 많이 배려해 주셨고요.”

배려.

이 단어는 참 묘하다.
누군가에게는 감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빚이 된다.

나는 그 단어가 공중에 떠 있는 걸 보았다.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었지만, 곧 누군가의 것이 될 준비가 된 단어.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어떤 분들은 배려를 부담으로 느끼기도 하시고요.”

이 말은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배려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다.

JD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죠.”

그 순간, L의 자리는 조금 더 멀어졌다.


며칠 뒤, 디자인팀 파트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L님, 잘 지내시죠?”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네. 아직은 적응 중인 것 같아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근데... 이전 팀 얘기를 좀 하시더라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약간 기울였을 뿐.


“많이 힘들었다고요.”

그 말은 예상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 그래요.”

놀라지 않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저도 안타깝게 생각해요.”

이 한 문장으로, 나는 공감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공감은 언제나 양면이다.


“그래도... 음.”

파트장은 말을 멈췄다.


“다들 최선을 다했는데,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좀...”

말을 끝내지 않아도 충분했다.

나는 그녀가 끝내지 않은 문장을 굳이 완성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조용히 적어 두었다.


‘최선을 다했는데’.

그날 이후로, L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바뀌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예민했죠.”

“배려를 많이 받았잖아요.”

“본인은 힘들었다고 느꼈을 수는 있죠.”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모이면, 하나의 인상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던 사람.’


사람들은 그 인상을 자신이 직접 만든 것처럼 느낀다.

나는 그걸 고치지 않았다. 아니, 고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팀장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팀 분위기는 어때요?”

나는 잠깐 생각하는 척했다.


“정리된 느낌이에요.”

이 말도 거짓은 아니다. 정리는 되었으니까.


“각자 역할이 분명해졌고요.”

팀장은 안심한 듯 웃었다.


“그럼 됐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끝냈다.

사람들은 끝났다고 믿는 순간, 다시 보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었다.

L은 이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다루기 어려웠던 사람’, ‘배려를 부담으로 느낀 사람’, ‘조금 예민했던 팀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가 의도하지 않아도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이 팀에, 다음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그 사람이 어떤 기준으로 비교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억은 바뀌었고,
기준은 세워졌다.


그리고 이 기준은 다음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사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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