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중국적 스파이입니다."
이중 국적 스파이’, ‘환경 운동가’, ‘애달픈 연인’, ‘추울 땐 가스레인지’…
살면서 이런 분들을 만날 일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첫 사회생활을 중견 교육회사에서 시작했습니다.
교육팀으로 발령받아 처음 맡은 업무는 신입 학습지 선생님들을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학습지 선생님이 되려면 연수원에서 2주 가까이 합숙하며 교재 지식과 교수법을 배우고 실습해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그 시간을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상적이진 않았습니다. 학습지 선생님이 항상 부족했기에, 지원만 하면 누구든 연수원에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역할 중 하나는 기본 역량이나 인성이 부적합한 분들을 탈락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연수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교육이 끝날 때까지, 교육생을 관찰하고 면담하는 것이 제 일상이었죠.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 지금도 잊히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이중 국적 스파이’였습니다.
그분을 처음 본 날은 눈이 유독 많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신입 선생님들을 태운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선배 강사님들과 함께 연수원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관광버스가 들어서고, 긴장한 얼굴의 교육생들이 한 명씩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유독 불안한 눈빛을 가진 한 남자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강사들의 인사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뿐 아니라 다른 강사님들도 동시에 “특이한 사람”이라는 걸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그분을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선배들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합숙 교육은 수십 명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작은 문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보이면 반드시 면담을 통해 안전하게 귀가 조치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첫날 제가 발견한 특이한 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 째, 다른 사람들과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둘 째, 불안한 기색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살핀다.셋 째, 대화 중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첫날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벌어졌습니다.
아침 식당에서 그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9시까지 강의장에 와야 하는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결국 숙소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그 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안에서는 인기척이 났지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10분 넘게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관리실의 도움을 받아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안에는 그분이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흠칫 놀랐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왜 강의장에 오지 않으셨나요?”
“…”
“괜찮으시면 저와 함께 가시죠.”
그제야 입을 열었습니다.
“강사님…”
“네, 말씀하세요.”
“…사실,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표정을 감추고 차분히 되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사실 이중 국적 스파이입니다. 지금 산업 스파이로 미국과 러시아 양쪽에서 쫓기고 있습니다.”
“네…?”
“아무래도 제가 여기 있는 게 발각된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떠나야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고백에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다음 행동은, 제 예상조차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은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겠습니다.
그 다음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