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기준이란 이름으로

J_Part 1. 정리된 사람

by 직장인C

사람들은 정리되었다고 말한다.

문제가 없다고.

분위기가 안정됐다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용히 웃었다.

정리된 건 팀이 아니라 나였다.


팀장은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흐름을 바꿨다.

보고는 직접 받고, 피드백은 본인이 하고, 구조를 단순화했다.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그게 가장 치밀한 방식이다.

지목하지 않으면 항의할 수도 없다.


회의에서 R이 바로 팀장을 보며 말하는 걸 나는 두 번, 세 번, 네 번 보았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부터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R은 이제 나를 먼저 보지 않았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팀장에게 바로 보고했고,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그의 말은 통과됐다.


그 순간 묘한 감각이 올라왔다.

이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 아니라, 영역이 지워지는 감각이었다.

나는 화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감정이 드러난다. 감정이 드러나면 불리해진다.

대신 나는 더 조용해졌다. 회의에서는 요약만 했다.


“네, 그렇게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팀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순응은 의심을 잠재운다. 팀장은 내가 성숙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성숙이 아니라 관찰이다.

사람은 자기 자리를 빼앗기면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싸우거나
기다리거나.


나는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지쳐 보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지친 얼굴은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나는 몇 명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요즘은 팀장님이 직접 챙기시니까 오히려 저는 편해졌어요.”


이 말은 불만이 아니다. 칭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은근히 구조를 드러낸다.

JD가 말했다.


“J님이 정리 안 해주셔도 이제는 다 바로 가네요.”

나는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배우는 중이니까요.”

배우는 사람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래서 안전하다.


그날 밤, 나는 노트를 펼쳤다.

L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넘기고, R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썼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실수도 빨라진다.


팀장은 구조를 바꿨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람은 구조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은 항상 남는다.


R은 지금은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직접 보고하고, 바로 피드백 받고, 인정받는 느낌.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저 기다렸다.


사람이 처음 실수하는 순간을.

그리고 그 실수가 누구 책임처럼 보일지 결정되는 순간을.


정리된 건 내 역할이 아니라 팀장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이 팀 안에 있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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