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기준이란 이름으로

J_Part 2. 보이는 사람

by 직장인C

팀장이 구조를 바꿨다고 해서 힘의 방향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사람은 보고 라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두려움으로 움직인다.


외부 팀과의 협업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팀장은 내가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했겠지.

다른 팀과 직접 연결해주고,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내게 맡겼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다르게 보았다.

이건 기회가 아니라 검증대였다.


상대 팀 팀장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자료를 꼼꼼히 보고, 질문도 직설적이었고,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처음 미팅에서 그가 말했다.


“이 구조는 왜 이렇게 설계하셨죠?”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이론은 알았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맥락까지 정확히 설명하기엔 준비가 부족했다.

순간 옆에 앉아 있던 R이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현장 데이터를 기준으로...”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네, 그건 내부적으로 정리된 기준입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분명히 끊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R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조율하는 사람이고.

그 차이는 회의실 안에서 눈에 보였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상대 팀장이 직접 말했다.


“다음부터는 실무 담당자가 조금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실무 담당자.

그 말은 내가 아니라 R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역할을 바꿨다.

회의에는 참석하되, 설명은 R에게 맡겼다.

나는 “정리”만 했다.

겉으로 보면 효율적인 분업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R이 앞에 서면 R이 드러난다.

R이 드러나면 실수도 드러난다.


나는 그걸 기다렸다.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R은 자료를 밤늦게까지 정리했고, 수정 요청이 오면 바로 반영했다.

팀장은 만족해 보였다.


“이번 건 좋네요.”

그 말은 이제 R을 향해 있었다.

나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 대신 작게 덧붙였다.


“속도는 빠른데, 기준은 아직 다듬어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은 칭찬도, 비판도 아니다.

하지만 의심을 남긴다.

JD가 슬쩍 말했다.


“맞아요. 지난번에도 한 번 숫자 오류 있었죠.”

작은 실수였다.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있었다’는 기록은 남는다.

나는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봤다.


R은 점점 더 보이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팀장에게, 외부 팀에게, 그리고 팀 안에서도.

보이는 사람은 언젠가 표적이 된다.


나는 아직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흐름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팀장은 이 프로젝트가 내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기회는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성과를 얻고, 누군가는 비교를 얻는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R이 처음으로 완벽하지 않은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이 어떤 이야기로 정리될지를.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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