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_Part 4. 기준이란 이름
사람을 직접 건드리면 흔적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건드린다.
기준은 항상 옳아 보이니까.
다음 프로젝트 회의 전날, R이 초안을 가져왔다.
빠르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고, 내용도 이전보다 더 직설적이었다.
나는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에 펜을 멈췄다.
“이 표현은 조금 과하지 않나요?”
R은 고개를 들었다.
“어떤 부분 말씀이신가요?”
“여기요. ‘현장 적용 시 심각한 리스크’라는 표현.”
나는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심각한’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해요.”
R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그 정도로...”
나는 말을 끊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수치는 수치고, 표현은 전략입니다.”
그 말은 누구도 반박하기 어렵다.
“우리는 문제를 지적하는 팀이 아니라,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팀이에요.”
나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이 문장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R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한 번 흔들렸다.
“그럼... 어떤 표현이 좋을까요?”
나는 웃었다.
“‘개선 필요 구간’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날 이후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조금 더 다듬어보죠.”
“톤을 낮춰주세요.”
“너무 앞서가지는 말아요.”
누가 들으면 합리적인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그 방향은 하나였다.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
며칠 뒤 외부 팀과의 회의에서 R은 또 설명을 맡았다.
나는 그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문장이 짧아졌고, 강한 단어를 쓰지 않았다.
상대 팀 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이 부분, 리스크는 어느 정도로 보시죠?”
R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개선이 필요한 구간입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상대 팀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구체적으로요.”
R은 잠깐 나를 봤다.
그 눈에는 확신이 없었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수치상으로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관리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날 회의가 끝난 뒤, 상대 팀 팀장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엔 설명이 조금 애매했네요.”
그 말은 R에게 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더 보완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R이 메시지를 보냈다.
J님, 혹시 제가 너무 완화해서 말한 걸까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너무 날카로워도, 너무 무뎌도 안 되니까요.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답도 아니었다.
며칠 뒤 JD가 툭 던졌다.
“R님 요즘 예전만큼 자신감은 없어 보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요.”
경험 부족.
그 말은 누군가를 성장 중인 사람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아직 부족한 사람으로 남겨둔다.
나는 이제 확신했다.
R은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하는 사람은 점점 더 작아진다.
이건 공격이 아니다.
그저 기준을 공유하는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점점 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말이 자꾸 수정되면 어느 순간 말을 아예 줄인다는 걸.
그게 다음 단계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