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관리된 위기

팀장_Part 1. 설명되지 않는 침묵

by 직장인C

R이 달라졌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회의실 안,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였다.


“R님,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수정했나요?”

나는 평소처럼 물었다.
지적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R은 잠시 멈췄다.

전에는 “이렇게 바꾸면 더 명확할 것 같았습니다”라며 자기 판단을 설명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J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요.”

짧은 한 문장.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렸다.

나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걸렸다.

R은 원래 누군가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하지만 자기 기준은 분명했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판단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의 이름을 먼저 붙인다.


“J님이...”
“J님이 말씀하셔서...”
“J님이 그렇게 보신다고 해서...”

그 문장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며칠 뒤 회의에서 또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외부 협업 자료를 검토하는 자리였다.

나는 R에게 물었다.


“R님 의견은 어때요?”

그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J를 흘끗 보았다.

아주 미세한 동작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봤다.


그 시선은 확인을 구하는 눈이었다.

허락을 구하는 눈.

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제야 R이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은 자기 의견이 아닐 때 가장 많이 나온다.


그날 퇴근 직전, R의 메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팀장 참조로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수정과 수정, 또 수정의 흔적이 보였다.

지워진 문장들이 눈에 밟혔다.


‘~라고 판단됩니다’
‘~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이런 문장들이


‘~로 수정하겠습니다’

‘지적 주신 부분 반영하겠습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는데.

나는 의자를 뒤로 밀며 생각했다.

이상하다.

누군가 R의 어휘를 바꾸고 있다.

누군가 그의 판단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직접적인 흔적은 없다.

소리도 없다.
갈등도 없다.

오히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며칠 후 점심시간이었다.

사내 식당에서 R과 마주쳤다.


“요즘 좀 피곤해 보이네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R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또 그 말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게 문제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업무는 돌아가고 있었고 갈등도 표면적으로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R의 어깨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회의실 의자에 앉는 자세가 달라졌고, 발언 전 망설임이 길어졌고, 웃음이 짧아졌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변화를 알고 있었다.

예전에 L이 그렇게 변했었다.

나는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아니야.

이번엔 아닐 거야.


L은 다른 상황이었고 이미 정리된 문제였다.

이번엔 다를 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날 저녁 사무실 불을 끄며 이상하게도 가슴이 답답했다.

문제는 없는데 문제가 있는 느낌.

설명할 수 없는데 명확한 불안.

나는 그 불안을 아직 이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확인이 되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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