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좋지 않은 사건에서 위로받는 법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몇년 전이었다. 나는 다니던 로펌을 관두고 새로운 로펌을 차렸다. 개업한지 1년차 정도 되었던 때에 한 형사사건과 관련해서 나이든 의뢰인이 부인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변호사님, 정말 억울합니다”
의뢰인의 눈은 참 맑아보였는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무슨 죄를 지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첫날 상담만 4시간 가량 진행 했다(원래 상담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담이라기 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의뢰인은 내내 울면서 이야기를 했고, 나를 선임하면서 이때까지 자기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서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의뢰인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바라는 재판은 할 수 없고, 무죄 주장을 하겠다고 했다. 어쩐지 의뢰인의 눈에서 진실성이 보이는 듯 했다. 물론, 변호사는 절대 의뢰인을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된다. 의뢰인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신에게 유리한 사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서 의뢰인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 또한 변호사의 능력이다.
나는 의뢰인의 무고함을 믿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는 변호인이 되는 순간 의뢰인을 신뢰하든 아니든 전적으로 의뢰인의 편에서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변호를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더욱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 의뢰인은 변호사를 고를 수 있지만, 의뢰인도 변호사가 자신을 변호하고 싶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기록을 수 없이 보면서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좋은 방안들을 함께 모색했다. 결국 재판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의뢰인과 변호사가 한 팀이 되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소통은 필수다. 물론, 쓸데없는 연락을 계속 해서는 안되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변호사는 별로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판 내내 어째 재판장은 내 변호나 의뢰인의 말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꼭 벽에다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형사재판의 경우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변호사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재판장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재판부를 잘 만나는 운이 상당히 중요하다. 운이 정말 나쁘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형사재판은 무죄 추정의 원칙인데, 왜 원칙이 잘 지켜지는 것 인지.
결국 1심에서 유죄가 나왔고, 집행유예가 나왔다. 의뢰인은 2심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의뢰인부터 다시 수임해서 돈을 벌고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건은 내가 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권유를 해드렸다.
그리고 올해 초에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대법원 상고기각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며칠 뒤 부인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연신 감사하다고 다 내 덕이라고 했다. 항소심 변호사님이 내가 정말 열심히 했고, 내가 정리해둔 주장 및 내용을 대부분 많이 사용했다고 하셨다. 항소심 판결문을 읽어보니 내가 정리했던 내용을 주된 근거로 무죄가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무죄를 받아내지 못했던 사안으로 개인적인 좋은 사례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과가 좋으면 베스트지만 소송이라는 것이 항상 결과가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하고, 재판부도 잘 만나야 하며, 사회적 분위기라는 것에도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지더라도 후회없게 끔 소송을 진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와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소통하고, 최선을 다하고, 빠짐 없는 준비를 한 후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쁜 결과가 나온 경우에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지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사건을 하면서 치유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는 것도 의뢰인의 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