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가야 건국과 김수로왕 설화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7
ㅡ 여섯가야건국과 김수로왕 설화 ㅡ
고대 ‘여섯가야’는 부족연맹체 수준에 머물러 ‘신라’와 ‘백제’로 통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상당 기간 공존했음에도 우리 역사는 그 시기를 ‘사국시대’ 가 아닌 ‘삼국시대’로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의 김부식, <삼국유사>의 일연 또한 ‘삼국’을 기준으로 서술하고 있어 이러한 인식이 오랜 전통임을 알 수 있다.
‘여섯가야’ 중 역사서에 주로 이름을 올린 나라는 ‘금관가야’와 ‘대가야’이다.
'금관가야'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야계 고대국가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개국 군주인 '김수로왕'이 나라를 세우고, 10대 '구형왕' 까지 약 490년 동안 이어졌다.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구형왕' 10대까지가 '금관가야' 왕조로 여겨진다.
'대가야'는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 중심으로 후기에 가야연맹 내 주도 세력이었다.
건국 시조는 '이진아시'로, <지리지>에 따르면 약 520년간 존속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시기는 알기 어렵다.
전성기에는 영남과 호남 일부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중앙집권적 국가로 성장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힘을 잃고, 562년 신라군 공격으로 멸망했다.
두 나라는 형제국가로 분류 되지만, 결속을 다지거나 신라와 백제에 맞서 공동전선을 펼쳤다는 구체적 기록은 없다. 즉, 밀접한 협력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가야국 건국설화를 보자면 <삼국유사>의 ‘김수로왕 설화’는 ‘구지가’와 엮인 '난생설화'로 가장 유명하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에 사람들 이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6개의 알이 내려왔다. 알에서 태어난 6명의 아이가 각각 가야의 왕이 되었고, 그 중 가장 먼저 깨어난 아이가 ‘김수로’였다.
통일신라 시대 때 '최치원'이 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이야기가 ‘석이정전’ 인용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천상신 ‘아비가지’와 지상신 ‘정견모주’ 사이에서 태어난 6명의 아들이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김수로는 아비가지의 아들이자 이진아시의 동생이며 이름은 ‘뇌질청예’였다. 대가야를 세운 이진아시가 형이고,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이 둘째로 나온다.
이 두 설화는 가야건국과 발전 시기를 각각 초기 금관가야와 후기 대가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후 금관가야 김수로왕 계열은 신라 사회에 편입되는데, 신라 '문무왕' 때(661년) 김수로왕의 묘를 신라종묘에 합사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는 '문무왕' 모친 '문명왕후'가 '김유신' 여동생이며,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 증손자였기 때문이다. 즉 문무왕 역시 외가쪽으로는 김수로왕 직계 후손이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설화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변한 구야국 9명의 간들이 하늘에서 “너희들의 왕을 내려 보내겠다”는 계시를 받았다. 왕을 내려보내려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이에 가락국 9명의 간들과 203명의 백성들이 김해 구지봉에 올라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며 ‘구지가’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커지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왔고, 그 안에는 6개의 둥근 황금 알이 있었다. 12일 후,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6가야의 왕이 되었고, 키가 9척에 가장 먼저 태어난 ‘수로’는 금관가야를 세웠다. 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출신 공주 '허황후'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20여 명 신하와 금은보화 싣고 배로 왔다. 두 사람 사이에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거등왕'으로 가야 왕업을 이었다. 나머지 아들들은 외가의 권력을 이어 '김해허씨' 시조가 되었고, 일곱 아들은 세상을 비관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한다.]
여섯 개의 금알과 김수로가 금관가야를 세우고, 인도 공주 허황후와 결혼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국제결혼' 이다.
'김수로왕 설화'는 신이 직접 백성들에게 왕을 내림으로써 지도자로 정하는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갖는다. 이는 고구려, 신라 설화와 차별화된다.
최초의 집단 노동요 ‘구지가’는 하늘의
계시를 받들어 백성들이 ‘구지가’를 부르며 춤추고 노래하는 신맞이 축제노래로 전해진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요'로 알려져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이 '구지가'는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고 우리나라 최초 노동요로 각종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었다.
가야는 일본에 철을 수출하는 등 가야와 일본은 외교·무역적으로 밀접한 관계였다.
김수로왕 설화는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 등에도 일부 언급되며, '임나일본부' 설화와 연관이 있다.
허황후는 ‘아유타국’(현재 인도 지역) 출신 공주로, 신하들과 함께 금은보화 실은 배를 타고 가야에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이 결혼 과정도 <삼국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당시 항해기술이나 거리를 고려할 때 인도에서 두 달 만에 도착했다는 점은 현실적이지 않아, 승려 '일연'이 불교 중심지인 '인도'를 이상화하며 공주 이야기를 각색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어쨌든 허황후는 김해허씨 시조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계욕일 즈음, 구지봉에 모인 백성들이 하늘의 음성을 듣고 ‘구지가’를 부르는 모습이 전해진다. 이는 신의 내림을 받았다는 독특한 기록으로, 한국 설화에서 신이 직접 지도자를 지정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하다. 성경의 ‘모세’ 일화 와도 비견된다.
일본 건국설화 중 ‘스사노오’의 후손이 한국으로 건너와 김수로왕 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일본과 가야 역사 간 상호 영향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일본의 <일본서기>, <고사기>에는 김수로왕과 동생들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김수로왕 동생 중 한 명 ‘김청수’는 일본에 건너가 '스가하라'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화도 전해 진다. 이와 관련해 ‘김수로왕 설화’와 일본 국가 ‘기미가요’의 연관 설도 존재한다.
이처럼 가야와 일본, 당시 백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이 분명하다.
‘김수로왕 설화’는 가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그의 전설적인 출생과 통치 이야기는 한국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어서 <고구려 2대 유리명왕>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