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필가’로 가는 길 ㅡ생태도시로 가야하는 이유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3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3

ㅡ ‘중수필가’로 가는 길 ㅡ


수필이란?


‘수필’(隨筆)은 한자로 ‘따를 수(隨)’, ‘붓 필(筆)’ 자를 씁니다.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생각을 따라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글입니다. 형식도, 정답도 없습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쓰면 되는 글.

바로 이 점이 수필 묘미입니다.


보통 수필은 ‘경수필’(輕隨筆)과 ‘중수필’(重隨筆)로 나뉩니다.


‘경수필’이 가볍고 일상적인 내용을 다룬다면,


‘중수필’은 보다 진지하고 철학적이며, 사회적 주제에 대한 논리적접근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 하면서도 그 속에 사유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중수필가’란, 바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삶의 경험과 사회적 주제를 바탕 으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람, 그들은 단순한 감상이나 에피소드 전달을 넘어,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의 해답을 풀어놓습니다.

인간관계, 사회문제, 철학적 고찰 등 다양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룹니다.


사실, 저는 ‘중수필’이라는 말조차 13년 전 처음 들었습니다.


당시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 활동 하던 저는 지역 일간신문에 칼럼 을 자주 썼습니다. 그러던 중, ‘현대문예’에 계시던 분께서 제 글을 보시고는 수필 공모전에 한번 출품해보라 권유하셨습니다.


처음엔 ‘제가 무슨 수필가 입니까' 하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정치인 이력 중 하나로 ‘등단 수필가’란 명칭이 꽤 근사해 보일 것 같아서, 그동안 써왔던 칼럼 중 하나를 손봐서 조심스레 출품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선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문예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


당시 지역신문에도 기사로 보도 되었습니다.


<박철홍 전남도의원, 수필가 등단>

(무안=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2012.03.12 11:39 보도


[전남도의회 박철홍 의원(민주·담양 1)이 ‘현대문예 제62회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에 당선돼 작가로 등단했다.

도의회에 따르면 박 의원은 ‘생태도시로 가야 하는 이유’를 출품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박 의원의 작품에 대해 “수준 높은 문학성을 지니면서도 오늘 우리 사회에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목표를 분명하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수필문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공직 생활의 현장 경험을 글로 썼는데 뽑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틈틈이 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를 글로 표현해 보겠다”고 수상 소감 전했다.]


그런데 정작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제 수상작에 대한 심사평 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낯 뜨겁고 과분한 평가 였습니다.


[“수필에는 ‘경수필’과 ‘중수필’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문학성을 중시하는 ‘경수필’만이 마치 수필 전부인 양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수필’은 종합적인 현상 분석 능력과 객관적인 논리, 수준 높은 사유 판단과 사상을 요구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 칼럼들이 이 영역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문예사조 속에서 박철홍 씨의 본격적인 중수필은 통쾌하며, 오늘의 수필문학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 평을 읽고, 저는 ‘중수필이라는 게 있었나?’ 하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저 저는 신문에 칼럼을 쓰듯 써낸 글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수많은 글을 써 왔고, 특히 한국사 관련 글로는

〈고조선부터 6.25 전쟁까지 – 한국통사〉를 정리해 두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소설도 한 편 준비 중입니다.


물론, 소설은 생전 처음 써보는 장르라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읽고 있자면, ‘이게 무슨 글인가…’ 싶어 한숨만 나올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꿈이 하나둘 사라지는 이 나이에 아직 ‘무언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희망입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예전에 당선된 수필 이야기를 꺼냈더니, 문예지 ‘에세이스트’ 쪽에서 최근 쓴 수필을 한번 보내보라는 권유 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써둔 글 가운데 비교적 문학성이 있는 이번에는 경수필로 <추억의 수바레>라는 글을 골라 조금 다듬어 보냈는데, 또다시 신인상 수상 이라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다음편 글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저를 ‘중수필 작가' 라 불러주신 것처럼, 저는 시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인 글은 잘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곱씹고, 경험을 통해 얻은 작은 지혜를 진지하게 글로 표현하는 이 길이 제가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비록 재능은 부족할지 몰라도

이렇게 중수필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시간을 채워가고, 나와 세상을 성찰할 수 있음에 그저 깊이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 저는, ‘중수필 작가'로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


ㅡ 현대문예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에 당선된 글ㅡ


<생태도시로 가야 하는 이유?>


‘생태도시’란 학문적 정의를 떠나 간단히 말하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도시를 뜻한다.


담양군은 민선 3기 시절,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생태도시’라는 개념을 군정의 핵심 브랜드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민들은 생소한 용어에 거리감을 느꼈다. 건축 허가가 늦어지거나 제한되는 경우, 애매모호한 ‘생태도시’ 탓이라 여기며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이런 여론 속에 민선 3기는 재선출되지 못했고 새로 출범한 민선 4기 집행부는 생태도시 정책을 사실상 중단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선 3기 동안 추진된 생태도시 정책은 오히려 민선 4기에 접어들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담양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수백만 명에 이르렀고, 도시의 이미지는 ‘청정 생태도시’로 자연스레 자리잡았다.


담양보다 훨씬 앞서,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이미 생태도시를 지향 하고 있었다.


특히 유럽은 ‘생태유럽’이라 불릴 만큼 대부분 도시가 생태적 가치 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거의 모든 나라는 생태도시를 일상의 정책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브라질의 ‘꾸리찌바’이다.

이 도시는 ‘꿈의 생태도시’라 불리며, 전 세계 공직자들과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꾸리찌바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생태적 세계관 뿌리>는 동아시아, 나아가 우리 민족 고유 철학에 더 깊이 닿아 있다.


동아시아 전통 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존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보았다.


불교의 연기설은 ‘만물이 서로 의존하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쳤고, 노장 사상은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삶, 즉 무위자연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유교 또한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유·불·선의 사상을 통합 하여 계승한 것이 바로 우리 민족 의 고유한 정신, '풍류사상'이다.


신라 말의 사상가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풍류는 유·불·선을 아우르며 뭇 생명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 한다.”고 했다.


<뭇 생명과 접촉하여 교화한다> 는 이 표현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생태주의 핵심 정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즉, 우리에게는 생태사상 철학적 전통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 했던 것이다.


반면 서구의 생태철학은 상대적 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다.


'베이컨'이나 '데카르트'와 같은 근대 철학자들은 자연을 인간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보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산업주의는 지구를 불과 백여 년 만에 황폐 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 영국에서는 스모그로 수천 명이 사망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산성비로 인해 산림이 죽고 농토가 폐허가 되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야 비로소 서구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태주의 철학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오히려 그 오랜 철학을 잊은 채, 서구 산업주의와 합리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여 국토를 훼손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생태계를 희생하며 이룬 개발은 결국 미래 세대에 더 큰 짐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서구 산업 도시의 폐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하며,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풍류정신, 생태적 철학 유산을 되살릴 책임이 있다.


생태도시는 단지 환경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에게 삶의 질 향상을 가져다주고, 지속 가능한 경제적 자산인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미래 세대에게 온전한 자연을 물려주는 길이기도 하다.


생태도시로 가는 길은 곧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되묻는 철학적 길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태도시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태도시로 가야 하는 이유이다.


ㅡ 전남도의원 박철홍 ㅡ

keyword
이전 13화본명과 닉네임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