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3 - 신돈의 개혁 1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78
ㅡ고려말 개혁과 좌절시대 3 ㅡ
(공민왕 3 - 신돈의 개혁 1)
"<민중의 '집단의지>는 늘, 항상 정의로웠는가?”
정답은,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이다
분명 우리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찬란히 빛난 <민중의 집단의지> 를 보아왔다.
<4·19 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 항쟁,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그 거대한 흐름은 진실을 향한 울림이었고, 불의에 맞선 숭고한 외침이었다. 이러한 순간 '집단 의지'는 단순히 옳은 것을 넘어,
성스러운 역사로 남았다.
그러나 <민중의 집단의지> 가 언제나 늘 그랬던 것일까?
민중의 뜻이 때론 누군가 선동에 휘둘리고, 정의가 아닌 분노와 오해로 폭주한 적은 없었는가?
<민중의 집단의지>는 빛이기도 하지만, 때론 어두운 그림자도 품고 있다.
그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강을 흐르게도 하지만, 방향을 잃으면 폭류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기도 한다.
세계사 속에는 민중의 뜻이 '집단의지'를 넘어 ‘집단광기’로 변질된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광기마저도 당시에는 ‘정의’와 ‘진실’처럼 포장되곤 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 대가는 민중 자신들이 혹독하게 치루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 시대 독일 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침체된 국민감정을 이용해 히틀러는 공식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 독일을 재건했다. 이에 독일 다수 국민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 참화와 유대인 학살이었다. 히틀러정권은 군사쿠데타가 아닌 90% 국민지지로 성립 ‘합법정부’ 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씁쓸 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등에 업고 유럽 영웅으로 떠올랐다. 정복당한 독일국민조차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베토벤은 그에게 ‘영웅 교향곡’을 헌정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로 황제에 오른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자 분노 하며 악보에서 이름을 지운다. 그러나 프랑스 민중은 열광했다. 그 결말은 역시 전쟁과 철저한 패망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민중은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며 천황을 위해 생명을 바친 가미카제 같은 집단광기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또한 원폭에 폐허가 되고 만다.
우리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독재정권으로 비판받는 '유신체제'나 '전두환정권'조차 당시 국민 다수 지지를 얻었다. 유신헌법은 투표율 91.9%, 찬성률 91.5%로 통과됐고, 전두환 정권 헌법은 이보다 더 높은 수치 95%를 기록했다. 또한 전두환은 간접선거지만 99%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정책도
둘러싼 여론도 이와 유사하다.
국민은 일등주의 대학입시경쟁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최면 광기에 빠져있다.
사실 정권이 국민을 현혹시키면 그 당장은 국민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린다.
각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100%는 없다. 각자 서있는 위치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는 다르다. 어떤 정부이든 당시 상황을 잘 살펴보고 국가와 민족을 최우선 으로 생각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드물다.
그 역사 속의 한 예를 보자!
'신돈'이라는 우리 역사상 찾아 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 인물이 있다.
<고려 말의 ‘신돈’>
우리 역사에서 흔히 ‘요승’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공민왕 정비 '노국공주' 사후, '반야'를 내세워 공민왕을 유혹하고 권력을 쥔 인물, 주색잡기에 빠져 고려 말 혼란을 가속화한 인물로 지금까지 오해되어 왔다.
후에 이성계 세력이 ‘신돈의 아들’ 이라며 '우왕'과 '창왕'을 폐위한 것도 신돈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 내용들이 오래 전 MBC에서 '신돈'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어 신돈이 재조명 되기까지 일반인 대부분이 신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거나 역사상식 이었다.
신돈에 대해 위 내용이 사실일까?
결론을 먼저 내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돈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많이 다르다.
고려 말이 아무리 혼란스러웠다고 하더라도 우왕이 오랫동안 왕위를 지속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우왕 뒤를 우왕아들 창왕이 이어 받은 것도 우왕이 신돈자식이라는 조금 의심이라도 있었으면 불가능한 일 이다.
단지 후에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한 '우창비왕설'(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는 설)과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움)은 그들 견강부회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신돈'은 우리 역사상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개혁을 실천했고 더 진전시키려다 당시 기득권세력 반격에 의해 실패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 신돈개혁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정리하겠다
신돈 그는 고려 말 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 최대의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개혁을 해가는 신돈의 정치적 기반은 공민왕의 신임과 하층민 지지뿐, 가문도 학연도 없었다. 그래서 신돈은
더 과감하게 개혁을 밀어 붙였고, 그래서 더 빨리 무너졌다.
공민왕이 신돈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돈 지지세력이
하층민 말고는 없었기에 신돈을 쉽게 통제가능한 존재로 생각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돈은 기대 이상으로 행동했고, 결국 기득권
반격으로 비참하게 몰락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민중의 의지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광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민중이 떠안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요승으로만 잘못 알려진 신돈을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오래 전 내가 영화를 보고 신돈과 관련하여 썼던 글을 먼저 올려 본다.
***********************
<난 당신들 편이야~!!>
오랜만에 IP TV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로얄어페어’라는 영화다. 덴마크 왕국 살벌하고 애틋한 과거 실화 이야기 였지만 남의 이야기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주인공인 '요한'이 형장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자신을 비난하는 군중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 편이야~!!”> 라는
외침 속에서 혁명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군중들 모습에 영화가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그 끝 장면은 우리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절대왕정이 무르익던 18세기 덴마크, 편집증을 앓고 있는 왕 '크리스티안 7세'는 영국의 어린 공주와 전략결혼을 한다. 하지만 왕은 하룻밤만을 어찌어찌 보내고 공주에게 임신을 시켜 왕자를 생산한다.
하지만 왕은 공주의 고결한척함에 질려 공주를 엄마라고 부르며 다시는 공주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촌이나 전전(왕이 창녀촌에 가서 폭행하고 난동부린 모습등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하면서 기행을 일삼는다.
그동안 덴마크 정치는 의회라는 곳에서 실권을 가진 자가 맘대로 한다. 왕은 단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의회장관들도 왕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다.
이러할 때 왕을 치료하기 위해 고용된 독일인 의사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왕과 왕비를 감싸주는 포용력으로 그들 신임을 얻어 나랏일에 참여하게 된다.
요한의 부추김과 전략으로 왕은 의회와 장관들을 물리치고 모든 정무를 요한에게 맡긴다.
요한은 당시 유럽에 거세게 불던 '계몽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고, 그 사상을 덴마크에 실현 하려 한다. '고문금지'등 당시 시대 에는 걸맞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 과 파격적인 개혁법안으로 덴마크 는 유럽에서도 가장 앞서 나가는 선진개혁국가가 된다.
이에 요한은 계몽주의 대철학가들 로부터 칭송의 편지도 받게 된다.
요한의 개혁적인 계몽사상이 왕비 '캐롤라인' 생각과도 맞닿아 둘은 점점 가까워지며 급기야 비밀스런 만남을 갖게 되고 왕비가 요한 애 까지 임신하게 된다.
요한 개혁정치에 위협을 느끼는 귀족들 견제는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왕비가 요한 애를 임신 하게 된 것을 귀족세력들이 알게 된다. 귀족세력은 그것을 기회로 ‘요한을 독일에서 온 남성이 왕비 를 겁탈하고 임신까지 시켰으며 국정을 농단해 덴마크를 말아먹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퍼트려 덴마크 민중을 요한으로 부터 돌려놓은데 성공한다.
그런 뒤 힘을 합쳐 쿠테타를 일으키고 왕을 압박하여 요한은 재판에 회부된다. 쿠테타에 성공한 귀족들이 왕까지 쫒지는 안했지만 왕비를 쫒아내고 요한은 죽이려고 한다.
요한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지만 사형직전에 왕이 사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허수아비가 된 왕은 왕비와 요한을 살리고 추방만 시킨다는 조건아래 귀족들 처벌요구에 동의 했지만 귀족들은 왕을 속인 채 왕비는 추방하고 요한은 형장에서 목을 베어버린다.
왕의 사면으로 추방만 당하는 것으로 알고 가던 요한은 마지막 길이 형장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이 요한 에게 돌을 던지며 비난을 하자 그들에게 향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 “난 당신들 편이야~”> 이었다.
이 영화에서 한국 한 시대사가 떠올랐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에도 비일비재 하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공민왕과 신돈>이었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신돈'의 등장은 여러 설이 있지만 노국공주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공민왕에게 노국공주 와 닮은 '반야'라는 여성을 소개해 '공민왕'으로부터 신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그 사실은 아직 정설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민왕과 반야 사이에 나은 아들이 '우왕' 이다. '이성계'가 우왕을 밀어낸 가장 큰 명분이 우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라는 것 이었다.
신돈은 어쩌든 6년간의 집권기간 동안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 설치와 활동을 통해 개혁적 정책을 실시했다. 부당하게 겸병 당한 토지와 강압에 의해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권문세가들이 탈점했던 전민(田民)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경우가 많아 당시 백성들 은 “성인이 나타났다.”라며 찬양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돈이 처첩을 거느리고 아이를 낳고 주색에 빠져있다는 비난이 높아졌고 권문세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민왕을 움직여 신돈을 반역혐의로 처형시킨다.
이에 백성들은 멋 모르고 신돈을 비난한다.
신돈 또한 그런 백성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 편이야 ~">라고
외쳤을 법 하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신돈이나 요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 권력과 지위는 왕권 의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
신돈과 요한 둘 다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상황이 전제군주 국가였으니 당연한 일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서 우리는 공개적 검증(의회 같은 제도권)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권력행사는 아무리 개혁적이라고 해도 위험하며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도덕성을 담보하지 않은 개혁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달라짐으로써 또 다른 수구의 이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우리는 많은 역사에서 본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대혁명등 성공한 혁명도 그 성공의 기쁨도 잠시, 혁명가들이 너무 앞서 가면서 동시대인과 호흡하지 못해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성급히 몰아붙이는 위로부터 개혁은 반드시 몰락하고 반동을 잉태한다는 서글픈 사실을 본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을 재확인 해주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 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했다. 여기서 '중우'란 말 그대로 <어리석은 대중>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피 흘린 소수의 각성된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중이 그에 따르면서 발전해 왔지만 다수 중우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그 사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역설했고,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입니다.">
이 영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왕비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왕이 되어 왕비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놓은 편지를 읽고 요한의 개혁정책을 요한이 죽은 지 50년 만에 덴마크에 다시 되살려 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역사의 진보는 얼마나 더디고 힘들게 쟁취하는 것인지를 300년 전, 덴마크에서 이 영화는 보여 주고 있고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발견하는 슬픔을 가져다 준 영화였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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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고려말 개혁과 좌절시대 3 ㅡ
(공민왕 3 - 신돈의 개혁 1)
"<민중의 '집단의지>는 늘, 항상 정의로웠는가?”
정답은,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 이다
분명 우리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찬란히 빛난 <민중의 집단의지> 를 보아왔다.
<4·19 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 항쟁, 그리고 촛불혁명까지>
그 거대한 흐름은 진실을 향한 울림이었고, 불의에 맞선 숭고한 외침이었다. 이러한 순간 '집단 의지'는 단순히 옳은 것을 넘어,
성스러운 역사로 남았다.
그러나 <민중의 집단의지> 가 언제나 늘 그랬던 것일까?
민중의 뜻이 때론 누군가 선동에 휘둘리고, 정의가 아닌 분노와 오해로 폭주한 적은 없었는가?
<민중의 집단의지>는 빛이기도 하지만, 때론 어두운 그림자도 품고 있다.
그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강을 흐르게도 하지만, 방향을 잃으면 폭류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기도 한다.
세계사 속에는 민중의 뜻이 '집단의지'를 넘어 ‘집단광기’로 변질된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광기마저도 당시에는 ‘정의’와 ‘진실’처럼 포장되곤 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 대가는 민중 자신들이 혹독하게 치루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 시대 독일 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침체된 국민감정을 이용해 히틀러는 공식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 독일을 재건했다. 이에 독일 다수 국민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 참화와 유대인 학살이었다. 히틀러정권은 군사쿠데타가 아닌 90% 국민지지로 성립 ‘합법정부’ 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씁쓸 하게 만든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등에 업고 유럽 영웅으로 떠올랐다. 정복당한 독일국민조차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베토벤은 그에게 ‘영웅 교향곡’을 헌정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로 황제에 오른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하자 분노 하며 악보에서 이름을 지운다. 그러나 프랑스 민중은 열광했다. 그 결말은 역시 전쟁과 철저한 패망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민중은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며 천황을 위해 생명을 바친 가미카제 같은 집단광기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또한 원폭에 폐허가 되고 만다.
우리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은 독재정권으로 비판받는 '유신체제'나 '전두환정권'조차 당시 국민 다수 지지를 얻었다. 유신헌법은 투표율 91.9%, 찬성률 91.5%로 통과됐고, 전두환 정권 헌법은 이보다 더 높은 수치 95%를 기록했다. 또한 전두환은 간접선거지만 99%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정책도
둘러싼 여론도 이와 유사하다.
국민은 일등주의 대학입시경쟁 분위기에 휩쓸려 집단최면 광기에 빠져있다.
사실 정권이 국민을 현혹시키면 그 당장은 국민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린다.
각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100%는 없다. 각자 서있는 위치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는 다르다. 어떤 정부이든 당시 상황을 잘 살펴보고 국가와 민족을 최우선 으로 생각해서 정책을 결정해야 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드물다.
그 역사 속의 한 예를 보자!
'신돈'이라는 우리 역사상 찾아 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 인물이 있다.
<고려 말의 ‘신돈’>
우리 역사에서 흔히 ‘요승’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공민왕 정비 '노국공주' 사후, '반야'를 내세워 공민왕을 유혹하고 권력을 쥔 인물, 주색잡기에 빠져 고려 말 혼란을 가속화한 인물로 지금까지 오해되어 왔다.
후에 이성계 세력이 ‘신돈의 아들’ 이라며 '우왕'과 '창왕'을 폐위한 것도 신돈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위 내용들이 오래 전 MBC에서 '신돈'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어 신돈이 재조명 되기까지 일반인 대부분이 신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거나 역사상식 이었다.
신돈에 대해 위 내용이 사실일까?
결론을 먼저 내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돈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많이 다르다.
고려 말이 아무리 혼란스러웠다고 하더라도 우왕이 오랫동안 왕위를 지속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우왕 뒤를 우왕아들 창왕이 이어 받은 것도 우왕이 신돈자식이라는 조금 의심이라도 있었으면 불가능한 일 이다.
단지 후에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기 위한 '우창비왕설'(우왕과 창왕은 왕씨가 아니라는 설)과 '폐가입진'(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움)은 그들 견강부회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신돈'은 우리 역사상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개혁을 실천했고 더 진전시키려다 당시 기득권세력 반격에 의해 실패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 신돈개혁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정리하겠다
신돈 그는 고려 말 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 최대의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개혁을 해가는 신돈의 정치적 기반은 공민왕의 신임과 하층민 지지뿐, 가문도 학연도 없었다. 그래서 신돈은
더 과감하게 개혁을 밀어 붙였고, 그래서 더 빨리 무너졌다.
공민왕이 신돈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돈 지지세력이
하층민 말고는 없었기에 신돈을 쉽게 통제가능한 존재로 생각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돈은 기대 이상으로 행동했고, 결국 기득권
반격으로 비참하게 몰락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민중의 의지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광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민중이 떠안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요승으로만 잘못 알려진 신돈을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오래 전 내가 영화를 보고 신돈과 관련하여 썼던 글을 먼저 올려 본다.
***********************
<난 당신들 편이야~!!>
오랜만에 IP TV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로얄어페어’라는 영화다. 덴마크 왕국 살벌하고 애틋한 과거 실화 이야기 였지만 남의 이야기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주인공인 '요한'이 형장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자신을 비난하는 군중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 편이야~!!”> 라는
외침 속에서 혁명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군중들 모습에 영화가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그 끝 장면은 우리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절대왕정이 무르익던 18세기 덴마크, 편집증을 앓고 있는 왕 '크리스티안 7세'는 영국의 어린 공주와 전략결혼을 한다. 하지만 왕은 하룻밤만을 어찌어찌 보내고 공주에게 임신을 시켜 왕자를 생산한다.
하지만 왕은 공주의 고결한척함에 질려 공주를 엄마라고 부르며 다시는 공주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촌이나 전전(왕이 창녀촌에 가서 폭행하고 난동부린 모습등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하면서 기행을 일삼는다.
그동안 덴마크 정치는 의회라는 곳에서 실권을 가진 자가 맘대로 한다. 왕은 단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의회장관들도 왕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다.
이러할 때 왕을 치료하기 위해 고용된 독일인 의사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왕과 왕비를 감싸주는 포용력으로 그들 신임을 얻어 나랏일에 참여하게 된다.
요한의 부추김과 전략으로 왕은 의회와 장관들을 물리치고 모든 정무를 요한에게 맡긴다.
요한은 당시 유럽에 거세게 불던 '계몽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고, 그 사상을 덴마크에 실현 하려 한다. '고문금지'등 당시 시대 에는 걸맞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 과 파격적인 개혁법안으로 덴마크 는 유럽에서도 가장 앞서 나가는 선진개혁국가가 된다.
이에 요한은 계몽주의 대철학가들 로부터 칭송의 편지도 받게 된다.
요한의 개혁적인 계몽사상이 왕비 '캐롤라인' 생각과도 맞닿아 둘은 점점 가까워지며 급기야 비밀스런 만남을 갖게 되고 왕비가 요한 애 까지 임신하게 된다.
요한 개혁정치에 위협을 느끼는 귀족들 견제는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왕비가 요한 애를 임신 하게 된 것을 귀족세력들이 알게 된다. 귀족세력은 그것을 기회로 ‘요한을 독일에서 온 남성이 왕비 를 겁탈하고 임신까지 시켰으며 국정을 농단해 덴마크를 말아먹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대대적으로 퍼트려 덴마크 민중을 요한으로 부터 돌려놓은데 성공한다.
그런 뒤 힘을 합쳐 쿠테타를 일으키고 왕을 압박하여 요한은 재판에 회부된다. 쿠테타에 성공한 귀족들이 왕까지 쫒지는 안했지만 왕비를 쫒아내고 요한은 죽이려고 한다.
요한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지만 사형직전에 왕이 사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시 허수아비가 된 왕은 왕비와 요한을 살리고 추방만 시킨다는 조건아래 귀족들 처벌요구에 동의 했지만 귀족들은 왕을 속인 채 왕비는 추방하고 요한은 형장에서 목을 베어버린다.
왕의 사면으로 추방만 당하는 것으로 알고 가던 요한은 마지막 길이 형장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모인 군중들이 요한 에게 돌을 던지며 비난을 하자 그들에게 향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 “난 당신들 편이야~”> 이었다.
이 영화에서 한국 한 시대사가 떠올랐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에도 비일비재 하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공민왕과 신돈>이었다.
시대는 많이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신돈'의 등장은 여러 설이 있지만 노국공주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공민왕에게 노국공주 와 닮은 '반야'라는 여성을 소개해 '공민왕'으로부터 신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그 사실은 아직 정설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민왕과 반야 사이에 나은 아들이 '우왕' 이다. '이성계'가 우왕을 밀어낸 가장 큰 명분이 우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라는 것 이었다.
신돈은 어쩌든 6년간의 집권기간 동안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 설치와 활동을 통해 개혁적 정책을 실시했다. 부당하게 겸병 당한 토지와 강압에 의해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권문세가들이 탈점했던 전민(田民)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 경우가 많아 당시 백성들 은 “성인이 나타났다.”라며 찬양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돈이 처첩을 거느리고 아이를 낳고 주색에 빠져있다는 비난이 높아졌고 권문세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민왕을 움직여 신돈을 반역혐의로 처형시킨다.
이에 백성들은 멋 모르고 신돈을 비난한다.
신돈 또한 그런 백성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 편이야 ~">라고
외쳤을 법 하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신돈이나 요한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 권력과 지위는 왕권 의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
신돈과 요한 둘 다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시대상황이 전제군주 국가였으니 당연한 일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서 우리는 공개적 검증(의회 같은 제도권)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권력행사는 아무리 개혁적이라고 해도 위험하며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도덕성을 담보하지 않은 개혁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가 달라짐으로써 또 다른 수구의 이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준다.
우리는 많은 역사에서 본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대혁명등 성공한 혁명도 그 성공의 기쁨도 잠시, 혁명가들이 너무 앞서 가면서 동시대인과 호흡하지 못해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성급히 몰아붙이는 위로부터 개혁은 반드시 몰락하고 반동을 잉태한다는 서글픈 사실을 본다.
이 영화는 이러한 점을 재확인 해주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 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했다. 여기서 '중우'란 말 그대로 <어리석은 대중>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피 흘린 소수의 각성된 시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중이 그에 따르면서 발전해 왔지만 다수 중우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그 사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역설했고,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입니다.">
이 영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왕비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왕이 되어 왕비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써놓은 편지를 읽고 요한의 개혁정책을 요한이 죽은 지 50년 만에 덴마크에 다시 되살려 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역사의 진보는 얼마나 더디고 힘들게 쟁취하는 것인지를 300년 전, 덴마크에서 이 영화는 보여 주고 있고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발견하는 슬픔을 가져다 준 영화였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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