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소설- 조선의 아이돌 10

제10화 – 칼끝 아래의 궁궐

by 초롱초롱 박철홍

제10화 – 칼끝 아래의 궁궐


남이가 한양에 돌아온 날,

도성에는 벌써 그의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장원 남이, 여진 정벌의 영웅이라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포로 일곱을 데려왔다더군!”


그 칭송이 하늘 높이 치솟을수록,

궁궐 안에서 칼끝을 감춘 자들의 시선은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


경복궁 근정전.


왕은 남이를 내금위 종사관 겸 북방 방어 전략 자문관으로 임명했다.


이는 곧 전장에서 휘두르던 검을 궁궐 안으로 들여오는 일이었다.

왕의 뜻이 곧 조정의 칼날이 되는 자리. 실로 위험한 영예였다.


의경세자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백성의 검이 아니라 조선의 검이 되어주시게.”


그 순간 좌측에 앉은 유자광 시선이 조용히 남이를 향했다. 이제 내금위 부장의 자리에 선 그는 오래된 미소를 입가에 걸친 채 고개를 숙였다.


“경하드리옵니다. 장군. 무과 장원에 이어 전공까지. 이제 조정의 모든 시선이 장군께 머무를 것입니다.”


남이는 미소 대신 짧은 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그대도 나만큼이나 많은 고생을 했건만, 모든 영광이 내게로만 돌아오니 마음이 쓰이고 애잔하네.”


유자광은 남이에게 공손히 예를 표한 뒤 조정대신들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허종, 한명회, 그리고 새로이 병조실세로 떠오른 이들과는 마치 오래된 벗이라도 되는 양 다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이에게는 근엄하고 무거운 얼굴들. 늘 일정한 거리를 두며 말을 아끼던 이들이 유자광에게는 술잔을 내밀며 허물없이 웃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유자광은 더 이상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조정의 어깨너머에서 권력의 바람을 읽고 있었다.


“검을 벼르려면 숯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지요.”


언젠가 유자광이 말했던 그 한마디가 문득 남이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나직한 말투였지만 그 속엔 가늠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남이는 잠시 유자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오래 전의 밤이 떠올랐다.


형제라 부르던 밤.


술잔을 부딪치던 그 떨리는 손끝.


그날 이후 유자광은 남이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유자광이 더 이상 자신 그림자가 아니란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건. 그는 이제 그림자 뒤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 바람을 등에 업고 남이보다 한 발 먼저 나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즈음, 의경세자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세자가 실권을 쥘 날이 가까워졌건만 몸은 반대로 무너져갔다.


궁 안에선 속삭임이 커지고 조정은 노골적인 줄 서기로 갈라졌다.


궁중행사가 끝난 어느 날,

남이와 유자광은 경회루 뒤편의 작은 정자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방 안엔 거울 하나, 그리고 술 한 병.


말보다 많은 것이 그 조용한 공간 안에 흘렀다.


거울 앞에 선 남이가 입을 열었다.


“요즘 조정에서 허종이나 한명회 가 자네를 꽤나 가까이 두는 듯하더군. 물론, 자네 뜻이 그와 다르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마음에 걸려.”


유자광은 잔을 따르며 조용히 웃었다.


“남 장군님. 저는 아직도 장군을 형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이는 제가 한 살 위 이오나 형으로 모시기로 한 그날 이후 저는 장군을 친형처럼 따르고 있습니다.”


남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으며 말없이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엔 세 사람이 있었다.

자신, 유자광, 그리고 검.


유자광 입술은 굳게 다물렸지만 검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유자광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상은… 저를 보지 않습니다.

제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만 봅니다.”


남이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천천히 물었다.


“그게 자네가 살아갈 방도인가?”


“아직 아닙니다. 아직은 저는 제 검을 꺼낸 적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저 자신만을 위한 검을 꺼내보고 싶습니다.”


남이는 거울 너머로 유자광을 바라보았다.


유자광 눈 속엔 두려움도 분노도 없었다.


다만 감춰지지 않는 결심 하나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밤, 남이는 칼집을 열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 방 안의 불빛은 희미했고, 검날은 어둠 속에서도 묵직한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왕도 세자도 아닌,

붉은 술잔을 나누던 밤 유자광을 보았다.


잔을 부딪치며 유자광에게 맹세했던 그 잊히지 않는 말.


“내가 장수가 되고 자네가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네.”


그 말을 내뱉으며 남이는 문득 자신이 유자광에게 어떤 열등감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신분으로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지만, 무예를 생의 본령처럼 여기며 살아온 남이의 성정상 유자광 무예는 단순한 실력의 차이를 넘어,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범접할 수 없는 유자광 무(武)의 경지. 그 앞에 선 자신이 마치 얕은 강물 위에 선 그림자처럼 흐릿하고 가벼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두 사람 사이엔 말 없는 침묵과 칼날의 냉기만이 남아 있었다.


이어지는 2부〈붉은 잔, 검은 장막〉— 의경세자의 돌연사. 그리고 검은 움직임의 시작 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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