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소설- 조선의 아이돌 9

제9화 – 북방, 피의 개막

by 초롱초롱 박철홍

제9화 – 북방, 피의 개막


조선의 북녘은 늘 불안했다.

압록강 북쪽 변방, 그늘진 숲과 언덕 사이에서 여진족의 마을들이 조선 국경을 넘나들며 수탈을 일삼았다.


왕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여진을 이제 피로 칼을 벼릴 때다.”


남이에게 내려진 첫 명령은 영변 부군을 넘어, 국경 수비대로 부임하는 것. 이른바 ‘여진토벌 선봉대’가 되라는 것이었다.


남이는 말 위에서 조정의 전갈을 들었다. 의경세자의 비서관이 직접 내린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쟁이란 검을 겨눈다고 끝나지 않는다. 자네의 검 끝이 백성을 향하지 않도록 하게.”


– 의경세자 ㅡ


남이는 그 글귀를 가슴에 품고 말에 올랐다. 함께한 자들은 주로 무과 급제자들, 그리고 지방 무관 출신들이었다. 그중에는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는 유자광도 있었다.


남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붉은 술 아래서 잔을 기울인 의형제의 약속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첫 전투는 여진의 기습이었다.

새벽안갯속, 국경 초소를 습격한 이들은 30명가량. 숲을 따라 움직이는 여진 기마궁사들 속도는 번개 같았다.


남이는 창과 검을 함께 들고 진두에 섰다.


“좌측 매복 조, 후미 경계! 오른쪽, 매복해라!”


그는 적을 정면에서 받아치기 보다 기병의 흐름을 끊고 지형을 활용했다.


“수풀 위에서 내 신호에 맞춰— 쏴라!”


"슝슝슝!"


화살이 나무 위에서 비처럼 떨어졌다. 특히 유자광의 화살은 한 화살에 정확히 여진족 한 명이 쓰러져 갔다.


남이의 지휘는 빠르고 절제되어 있었다. 무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투가 끝나고 적의 시신을 정리하던 순간. 한 장수가 감탄하며 말했다.


“장군께선 전장을 읽으십니다. 눈이 아니라, 몸으로.”


남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내 검은 아직도 무겁다. 사람을 베고도 가볍다면 장수가 아니지.”


불과 열흘 뒤, 첫 전공 보고가 도성에 전달되었다.


“남이 장군, 여진토벌에 있어 무피 전과, 포로 7인, 적장 1인 생포.”


왕과 의경세자는 그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정말 장수가 되겠구나.”


하나, 두 사람은 그 소식을 전혀 다르게 읽었다. 허종과 한명회이었다.


“남이의 전공이 퍼지고 있습니다. 백성들도 그를 영웅이라 칭송하옵니다.”


허종의 말에 한명회는 웃지 않았다.


“과거엔 장수의 이름이 백성에게 너무 멀었지. 그런데 지금은… 위험한 일이야. 게다가 왕이 그에게 ‘칼을 휘두를 권리’까지 줄지도 모른다.”


허종은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말했다.


“전하께선 남이를 쓰십니다. 하나… 궁 안의 정적들은 그를 싫어하겠지요. 그 틈을 제가 채우겠습니다.”


한명회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하나지만, 칼집은 여럿일 수 있어. 그대는 칼이 아니라, 칼을 고르는 손이 되어야 하네.”


그날 밤, 남이는 전장 끝자락에서 아스라한 불빛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은 무겁게 내려앉고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후, 그는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은 등불을 켰다. 손에 익은 붓을 들어 먼 조정에 있을 의경세자에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전하, 북방은 생각보다 춥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마음은 날씨보다 더 깊이 얼어붙은 듯합니다.”


검은 먹물이 흰 종이 위를 흐를 때마다, 그의 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회한이 번져갔다.


이튿날, 남이는 유자광과 함께 백두산 자락을 올랐다. 사방이 눈과 바람뿐인 길을 묵묵히 걸으며, 그는 가슴속에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천지를 내려다보며, 남이는 마침내 벅찬 숨결로 시 한 수를 읊조렸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안하게 못한다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그를 위해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하늘 아래 오직 남이의 목소리만이 바람을 타고 백두의 설산을 울렸다.


그러나 그날의 시 한 수가 훗날 그의 목숨을 앗아갈 줄은 남이도 곁에 서 있던 유자광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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