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도 흐른다 84

공민왕9- 권력자 이인임의 두 얼굴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84

ㅡ고려말 개혁과 좌절시대 9 ㅡ

(공민왕 9 - 권력자 '이인임'의 두 얼굴)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박정희를 권총으로 살해 했다. 이 사건 동기가 과연 우발적 김재규 개인 충동인지, 혹은 보다 거대한 정치적 음모 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설이 난무한다.


그러나 결과만큼은 분명했다. 곧이어 등장한 집권세력은 <전두환 중심으로 한 신군부> 였다.


이와 흡사한 일이 고려 말에도 벌어졌다.


1374년, 공민왕이 측근 '홍륜'과 내시 '최만생' 일파에 의해 시해된 사건이다. 이 또한 '명덕태후'를 비롯한 궁중세력 암묵적 개입설, 우발적 분노설, 혹은 보다 큰 정치 세력 음모설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결과는 분명 했다. <이인임>이라는 새로운 권력자 등장이었다. 공민왕 사후 혼란스러운 고려ㄷ조정을 장악한 인물이었다.


이인임은 이후 약 10년 넘게 권력 정점에 머물며 고려정치 중심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인임이 권력자로서 정치 행태는 전두환과 달랐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인임 통치 스타일을 독재자 '전두환'보다는 오히려 유연한 현실주의자 '김종필'에 더 가깝다고 평가한다.


2014년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작가 역시 이인임을 '김종필'을 모델 삼아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동안 대부분 사극에서는 이인임 을 <원나라에 빌붙어 고려를 등쳐 먹은 간신>, 또는 <고려멸망 일등 공신> 정도로 묘사했다.


대부분 다른 사극에서는 존재감 없이 곁다리처럼 소모되는 인물 이었다.


그러나 <정도전> 이라는 드라마 에서는 이인임을 <정치 9단>, <현실을 꿰뚫는 전략가>로 새롭게 그려냈다.


물론 이성계·정도전이 주인공인 이야기인 만큼 그는 결국 ‘정적’ 이자 ‘악역’으로 퇴장하지만, 그 정치적 언행만큼은 주목할 만 했다. (아래 사진 참고)


특히 드라마에서 이인임이 '최영' 장군을 설득하며 했던 대사는 내게 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가 북원의 편을 들면, 명과 북원이 힘의 균형을 이루어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그 때 사대를 버리고,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 해야 한다.”


이 말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드라마적 상상인지는 불분명하다. 또 실제로 그 전략이 실현가능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던 이유는 명백하다. 단지 정권 유지를 위해 내세운 수사라 할지라도, 오로지 <친명사대'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것처럼 여겼던 그 시대>, 그런 정치적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들 속에서 이인임은 확실하게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인임이 꿈꿨다는 <힘의 균형 속 자주 외교>는 훗날 조선 '광해군'이 추구했던 <중립외교>와도 맞닿아 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기묘한 외교줄타기를 하며 나라 존립을 지키려 했던 광해군, 그러나 결국 그도 ‘친명파’의 공격에 밀려 쫓겨 났다.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 이다.


우리는 외세강압과 국제정세 속에서 언제나 <'사대'를 주장하는 쪽>이 이기고, <'자주'를 말하는 쪽>은 패배해왔다.


조선역사가 그렇고, 고려역사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현실 속을 걷고 있다.


‘작은 나라’의 운명일까?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굴종의 역사일까?


여러분들 판단에 맡긴다.


이제 이인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인임은 공민왕이 시해되고 난 다음 날 새벽, 그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명덕태후 부름을 받고 궁궐로 들어와 공민왕 죽음을 확인했다.


이인임은 속으로 부르짖었을 것이다.


"공민왕은 죽었다. 개혁은 멈췄고, 권세는 다시 돌아왔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 이인임이 있다."


고려 말, 개혁군주 공민왕 칼날은 부패한 권문세족 뿌리를 겨눴다. 하지만 개혁의 상징 신돈이 죽고 권문세족을 향하던 칼날이 무뎌지고 왕의 손이 떨릴 때쯤, 다시 권력 중심으로 돌아온 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인임' (李仁任), 그는 고려말기 권신정치 상징이 된다.


공민왕이 신돈을 통해 개혁을 단행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권문세족 토지를 몰수하며 기득권을 흔들 때, 이인임은 공민왕 곁에 없었다.


오히려 이인임은 유배와 유직을 전전하며 중앙조정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신돈 몰락 이후, 공민왕이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자, 공민왕 이 다시 손을 내민 자가 이인임 이었다.


이인임은 다시 중앙정계로 복귀 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개혁에 의해 밀려났던 구세력을 규합하고, 점차 조정 주도권을 잡아갔다.


1374년, 공민왕이 자제위와 내시들에게 피살되자 고려정국은 혼돈에 빠진다.


공민왕이 시해되었을 때, 그 소식 을 가장 먼저 접하고 누구보다 신속하게 궁궐로 들어온 인물이 바로 이인임이었다. 궁중이 피로 물들고 혼란이 극에 달한 순간, 그는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며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정보전' 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정보를 손에 쥔 자가 권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인임은 그 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로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는 곧장 공민왕 왕비였던 '명덕태후'와 결탁해 어린 '우왕'을 즉위시켰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정권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겉으로는 어린 국왕을 보필하는 충신이었지만, 실상은 고려왕조 말기 권력중심에 군림한 실력자가 된 것이었다


우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한 허수아비였다. 조정은 이제 왕 명령보다 이인임 뜻에 따랐다. 인사는 이인임이 주도하며, 외교와 군사, 경제정책마저 그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이인임 명분은 ‘질서회복’ 이지만, 실상은 ‘권문세족 복귀’ 였다.


공민왕 개혁에 대한 본격적인 '반동'이 시작되었다.


이인임 정권 가장 큰 특징은 '외교 노선'의 모호함이었다.


이인임은 원나라가 무너지며 명나라가 세를 확장하는 와중에도 명확한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 '친명파'와 '친원파' 줄다리기 속 에서 '현상유지'만을 택했다.


앞 서 말한 '고구려'를 운운하며 그럴듯한 명분도 가지고 있었다.


이인임은 우왕, 최영과 함께 명나라 '철령위 설치' 요구에 강경하게 반대하며 최영과 손잡고 '요동정벌'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친명파 '이성계'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1388년, 이인임은 최영과 함께 이성계에게 명의 철령위 설치를 명분으로 요동을 공격하라 명한다.


그러나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고, 결국 친명파 반격은 성공한다. 이런 상황들은 뒤 편에서 자세히 정리하겠다.


어쨌든 이인임은 이성계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에서 쫓겨난다. 이후 그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일부 기록에는 유배 중 사망, 혹은 제거되었다고 전한다. 한때 왕 위에 군림했던 권신은 이렇게 역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이인임은 단순한 권신이 아니였다. 그는 고려말기를 대표 하는 보수 정치세력 상징이며, 공민왕 개혁의 반동, 그리고 이성계 조선건국의 전 단계였다.


누군가는 이인임을 현실주의자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대 흐름을 거스른 역사의 죄인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인임 등장은 '고려' 마지막 불꽃을 더욱 어둡게 했으며, 이인임 몰락은 '조선'이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전 예고편이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이 '시대개혁'을 가로막을 때, 권력은 곧 쇠락하고 역사 물결 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고려는 이인임 집권이후, 되돌릴 수 없는 길에 접어들었다.


이인임 집권 후, 신돈이 애쓰게 살려논 고려 개혁불씨는 꺼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반동 어둠이 채워갔다. 개혁이 무르익기도 전에 낡은 질서가 되살아났다.


그 순간, 고려는 다시 과거로 끌려갔다. 그리고 역사는 그렇게 또 한 번 방향을 잃었다.


이처럼 역사는 직선이 아니다.

한 줄기 개혁 뒤에는 반드시 반동이 스며든다. 혁신은 순간 이지만, 반동은 집요 하다.


그러나 물은 흐른다.


역사의 강물은 굽이쳐도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또 하나 10·26, 또 하나 1374년을 살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혁은 선언보다 유지가 더 어렵고, 시작보다 끝맺음이 더 위태롭다.


반동의 그늘을 넘지 못하면, 개혁은 언제든 퇴행으로 바뀐다.

그러니, 우리는 개혁 그 이후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이어서 최영과 이성계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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