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이야기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86
ㅡ고려말 개혁과 좌절시대 11ㅡ
( 댓글 이야기)
댓글!
자신이 쓴 글에 댓글이 달릴 때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집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굳이 시간을 들여 한마디라도 남겨준다는 건 글쓰기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물론 가끔은 날 선 악성댓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댓글 조차도 제 글이 누군가에게는 어떤 울림을 주었다는 증거라 생각하면, 그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제 글에는 댓글이 많이 달리진 않습니다. 글이 좀 길고, 주제도 역사 이야기이다 보니 가볍게 스치고 댓글 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때때로 한, 두 줄 남겨지는 진심 어린 댓글은, 제게 다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응원입니다.
사실, 저도 다른 분들 글에 댓글을 거의 달지 못합니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올리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다 보니, 정작 다른 분들 글을 찬찬히 읽을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 항상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소 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제 글에 달린 댓글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글에 놀라울 만큼 진정성있고 깊이있는 댓글이 꾸준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본문보다도 더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댓글이었습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그 댓글은 제 글을 뛰어 넘어 독자들 이해와 감동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댓글 덕분에 제가 매일같이 글쓰는 이유와 명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그 댓글 덕에 글 쓰는 일에 큰 힘 이 되고, 더욱 기쁘고 설레게 됩니다.
댓글이 지나치게 내 칭찬을 많이 해 주셔서 조금은 내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그 고마운 댓글을 몇 편 소개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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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흥미진진 그 자체입니다.
공민왕 하면 ‘쌍화점’이나 ‘자제위’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글을 통해 전혀 다른 입체적인 모습, 그야말로 ‘개혁군주 공민왕’ 재발견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충혜왕의 비극적 몰락, 그 아들들 충목왕과 충정왕의 짧은 치세와 갈등, 그리고 강릉대군 왕기 (공민왕)의 이례적 등극까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꿰뚫어주셔서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듯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덕녕공주와 희비윤씨의 권력다툼, 기철일파의 전횡, 원나라의 동요와 왜구 침입…
이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공민왕이라는 인물이 왜 시대적 개혁을 결심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역사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과학이다”
라는 말씀, 정말 울림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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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공민왕 2 – 개혁의 서막>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신돈 등용, 전민변정도감 설치, 권문세족과의 대결 등…
역사적 분수령을 어떻게 풀어내실지 기대됩니다.
항상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깊은 울림이 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다음 이야기,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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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깊이 있고 울림 있는 글이었습니다.
박철홍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역사와 현재를 오가며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고,
이번 글 또한 ‘신돈’이라는 인물을 통해 개혁과 민중의 집단의지, 권력과 진실, 그리고 역사의 중우정치 가능성까지
폭넓게 짚어주신 점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나는 당신들 편이야~!"
이 외침은 신돈뿐 아니라 수많은 시대의 선각자들이
무지한 시대 속에서 남기고 떠난 절규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절규를 외면하거나, 조롱하거나, 잊어버린 건 결국 우리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 말처럼,
결국 진실은 오래 걸려도 돌아오고, 역사의 진보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는 신념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제겐 큰 배움이고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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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한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공민왕의 결단과 냉철함, 그리고 최영·이성계·정도전 등 걸출한 인물들이 어지러운 국제 정세와 맞서 자주적 개혁을 펼치던 그 시절이 오늘날의 상황과 놀랍도록 겹쳐집니다.
특히 “전쟁이 아니라, 어떤 판단이 국익을 살리고, 어떤 명분이 국가를 망하게 하는가”라는 문장은 역사의 거울이자, 지금 우리 정치와 외교가 꼭 되새겨야 할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공민왕이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실리'를 선택했던 지혜는,
광해군의 길과 닿아 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 줍니다.
현실 정치가 그 뜻을 따라주길,
정파를 떠나 국익과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이길,
간절히 기원하게 됩니다.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에도 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공민왕의 용기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무너진 신뢰와 희망을 되살릴 ‘신돈’ 같은 변화의 주역이 다시 나타나길 바랍니다.
덧글:
안타까움과 함께, 현실 정치에 대한 작은 희망과 기원을 담아 정독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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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을 단순한 '요승'으로 낙인찍은 오랜 왜곡의 역사 앞에, 이렇게 치밀하고도 진정성 있게 되짚어 주신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추진한 개혁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과업이었고, 기득권의 반발을 무릅쓴 용기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최순실과의 비교는 단순한 착각을 넘어선, 역사에 대한 무례이자 후대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왜곡이라 생각합니다.
신돈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단순한 축첩이나 권력욕이 아니라, 결국 기득권 질서의 저항이었음을... 지금의 한국 사회도 이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깝고, 개혁의 불씨가 그렇게 꺼져버린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신돈이 그토록 꿈꾸던 세상은 아직도 도래하지 않았고, 그를 오해한 채 살아가는 우리가 오히려 죄인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진실을 다시 조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이었습니다. 다음 편도 꼭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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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홍님의 이 글은 단순한 역사해설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은 탁월한 문제제기입니다. 몇 가지 인상 깊은 지점과 함께 답글을 드려봅니다.
“난 당신들 편이야”
이 문장은 신돈과 요한의 인생을 넘어, 모든 ‘시대 앞선 개혁가들’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당시엔 ‘그들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중조차 준비되지 않았기에, 그 외침은 외롭게 메아리칠 수밖에 없었겠지요. '앞서 간 죄'의 잔혹한 대가입니다.
신돈의 개혁은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 학습’의 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정책은 조선 초 과전법과 신분개혁에 계승됐고, 그를 비난했던 사대부들도 결국 그의 제도에 기대어 새로운 질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정신’은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신돈을 ‘요승’으로 만든 것도, 요한에게 돌을 던진 것도 결국 ‘대중’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가의 비극이지요. 민중을 위해 나섰지만, 그 민중과의 정서적 교감은 부족했고, 제도적 정당성 없이 왕권이라는 불안한 사다리에 기대다 끝내 밀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단순히 신돈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넘어, 현대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직시하게 만드는 비유의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현실 정치에서 이처럼 한 사람의 도덕성과 의지에 의존하는 개혁은 매우 위험하며,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구조를 바꾸려면 민중과의 교감, 제도적 뒷받침, 시대적 준비가 삼위일체로 맞아떨어져야 하니까요.
700년 전 신돈의 외침은 오늘, 비로소 듣는 우리가 그 책임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정말 감동적인 연재였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공민왕 말기의 변태적 일탈'… 그 심리, 그 시대의 반영은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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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여러 번 멈춰서 한숨 쉬게 되는 글입니다.
"줘도 못 먹는 바보들"이란 말, 아프게 와닿네요.
공민왕은 분명 고려사의 마지막 희망이었고, 말 그대로 개혁군주였습니다.
그가 펼친 정책들은 오늘날에도 ‘용기 있는 결단’으로 회자될 만한 일들이죠. 그런 왕이 어째서 그렇게 허망하게, 그리고 모욕스럽게 생을 마감했는가—
역사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오히려 흙탕물 같은 기록만 남겨 놓았습니다.
공민왕 말년을 둘러싼 묘사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작위적 입니다.
당시 유교적 가치 기준 아래, 왕의 일탈은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만드는 절호의 명분이었을 겁니다.
'신돈의 자식' 운운하며 우왕·창왕을 부정한 것 역시, 고려의 마지막 희망을 지우려는 붓끝의 쿠데타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민왕 시해 사건은 단순한 ‘변태 군주의 최후’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마지막 심장이 정치적으로 해체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0.26과의 비교는 정말 놀랍도록 날카롭습니다.
시해 직후의 공백과 무대책,
그리고 새 질서로의 급작스런 이동까지.
역사는 반복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되짚지 않으면 다시 속절없이 반복합니다.
공민왕이 다시 조명받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가 꿈꿨던 정의로운 나라, 백성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
그 나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얼마나 가까운지, 아니면 먼지를 생각해 봅니다.
기억은 권력이 되고, 해석은 역사로 남습니다.
이 기록이, 그리고 초롱박님의 이 글이,
그 왜곡의 벽에 균열을 내는 작은 정론의 도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탄스럽고, 슬프고, 그래서 더 간절히 기억하고 싶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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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히 말하건대, 이 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저 브런치 작가 한 명의 데뷔 소감이라 하기엔,
이 글 한 편에 담긴 내공과 시간, 진심의 깊이는 이미 “작가”라는 단어가 오래전부터 어울렸던 분임을 증명합니다.
"불혹의 꿈은 이순의 꿈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문장 하나로 모든 독자의 마음이 흔들렸을 겁니다.
흔들림 없이 10여 년 이상 새벽에 글을 써온 분, 한국사를 천 편 가까이 정리하며 삶과 역사에 맞선 분, 그 모든 이야기를 ‘이제서야’ 브런치에 처음 쓰신다니 저는 그동안 몰랐던 제 자신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 보는 새벽에 단 한 명의 독자도 없는 글을 10년 넘게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작가이고, 그 이름이 박철홍 선생님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하루빨리 책이 나오기를 고대하며, 그날이 오면 제가 제일 먼저 서점에 달려가 사겠습니다.
그게 부끄럽지 않은 독자의 도리라 믿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매일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 부러움 담아, 존경과 함께. 당신의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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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공감입니다.
이 글은 단순 비교가 아닌, 시공간을 넘나드는 권력의 본질과 그 반복적 비극의 궤적을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특히 ‘자제위’와 ‘김재규’라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이 ‘권력 내부자에 의한 시해자’라는 공통점으로 교차되는 순간, 역사의 거울은 전율처럼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공민왕 시해에 대한 기존의 단선적 설명—‘후궁 문제로 인한 격분’—을 해체하고,
정치적 연출, 혈연 관계, 당시 권문세가의 대응 등
다각도의 정황을 통해 ‘권력연합의 제거 시나리오’ 가능성을 제시한 점은 설득력과 학문적 깊이를 동시에 갖췄습니다.
그리고 결정타는 이 구절이었습니다:
“공민왕이 지시한 연출을 핑계로 홍륜을 죽이려 했다는 건 모순이다.”
바로 이 모순에서부터 궁중음모론의 서막이 열린다는 통찰은 명민하고도 치열한 문제의식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또한 '고려사'의 사료적 한계를 조선 개창세력의 '사대적 시선'과 연결하여 제시한 부분은,
고려 말 개혁이 실패로 귀결되었는가, 혹은 조작된 실패로 규정되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결론적으로,
공민왕 시해는 단지 한 왕의 죽음이 아니라,
개혁의 가능성을 짓밟은 권력기득권의 승리였으며,
그 방식은 시대를 달리해도 놀랍도록 유사했다는 점.
*누가 칼을 쥐어주었는가*
라는 물음은 결국 지금 우리에게,
누구에게 권력이 쥐어져 있는가를 묻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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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홍 선생님의 고려사 강의 84편,
이인임을 중심으로 펼쳐진 ‘개혁과 반동의 대서사’를 이렇게 흡인력 있게 풀어내시다니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읽으면서 1979년 김재규 사건과 1374년 공민왕 시해 사건을 겹쳐놓은 비유,
그리고 그 결과로 등장한 전두환과 이인임의 비교 구도는 단순한 정치사 서술을 넘어
역사는 반복되되 늘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는 통찰을 담아내신 듯합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인임의 "자주 외교"적 언급을 통해 그를 무조건적인 간신·반동으로만 보지 않고,
한 시대를 살아간 정치인의 ‘현실적 고뇌’와 전략가로서의 양면성을 함께 조명하신 점입니다.
이 대목은 후일 광해군의 중립외교까지 연결하며 사유를 깊게 이끈 부분으로,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을 넘어, 오늘의 현실에까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개혁은 선언보다 유지가 더 어렵고, 시작보다 끝맺음이 더 위태롭다. 반동의 그늘을 넘지 못하면 개혁은 언제든 퇴행으로 바뀐다.”
→ 이 구절은 마치 '현재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시대의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직선이 아닌 굽이진 강물로 표현한 마무리 역시, 박철홍선생님 글의 문학적 완성도를 높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사유, 그리고 날카로운 오늘의 시선까지 담아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 독자 올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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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역사 글을 쓰고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댓글을 글 마다 이토록 진정성있고, 정성스럽게 달아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진정성과 정성에 대한 고마움으로 따로 한 편을 정리했습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