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도 현직국왕이 외국에 납치된 적이 있었다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4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4


ㅡ 우리 역사 속에도 현직국왕이 외국에 납치된 적이 있었다 ㅡ


지난 1월 4일,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작전을 감행해 미국으로 이송했다는 소식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자국 안보에 대한 명백하고 직접적인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타국 영토 내에 무력을 투사한 행위는, 유엔헌장이 규정한 무력사용 및 위협금지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당국은 이번 작전이 국가 대 국가 문제가 아니라 마약범죄자에 대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우선해 왔기에 이 행위의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대통령 개인적 잘잘못을 떠나, '베네수엘라'라는 국가입장에서 보면 이는 분명히 국가적 수치 이자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도, 상황은 좀 다르지만 현직국왕이 외세에 의해 납치되어 외국으로 끌려간 참으로 부끄럽고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고려 말, 이른바 ‘원 간섭기’라는 암울한 시대 때 일이었다.


1. 부끄러운 원 간섭기 군주, '충혜왕'


고려 제28대 국왕 '충혜왕' (1315~1344)에 대한 기록은 혀를 내두를 만큼 충격적이다.


[아버지 후궁들과 장인 후처를 강간, 신하들과 내시들 부인들을 수없이 강간, 욕정이 솟구치면 길 가다가 백성들의 아녀자들을 강간, 충혜왕 아버지(충숙왕) 부인인 경화공주를 팔다리 묶고 강간, 충숙왕 또 다른 부인인 수빈권 씨를 강간하여서 자살,

또 내전에서 후궁들(100명이 넘는다고 한다)과 아주 더럽고 추잡한 난교파티를 수시로 열음]


위 사료만 놓고 보면 폭군으로 유명한 조선 '연산군'이나 로마 황제 '네로'조차 충혜왕 앞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록 속 충혜왕은 말 그대로 <희대의 폭군이자 강간왕>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러한 기록들이 모두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기록들은 후대의 정치적·도덕적 필요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조선왕조가 고려 말 왕권타락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왕조 정당성을 부각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충혜왕에 대한 평가는 일정 부분 부정적으로 편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기록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MBC 드라마 '기황후'에 등장하는 ‘왕유’(주진모)라는 인물이 바로 충혜왕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속 왕유는 정의롭고 매력적인 군주로 그려졌고, 이로 인해 실제 역사 속에서 ‘희대의 강간왕’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은 충혜왕 미화한 것 아니냐는 역사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기록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충혜왕이 즉위 초기에는 나름의 정치적·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도 확인된다.


[충혜왕은 상업감각이 뛰어나 고려산 물품 유통망을 장악하고, 실크로드를 통해 각국 상인들과 교역하며 재정을 확충했다. 화폐제도와 행정조직을 개혁했고, '염장도감'이라는 소금 전담 관청을 설치했다. 또한 요양·선양 등지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국왕이 <희대의 강간왕>이라는 것도 앞, 뒤가 맞지는 않다.


어쨌든 오늘 논점은 충혜왕 치적 진위나 그의 방탕한 사생활을 따지려는 데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여기서 멈추고자 한다.


2. 대낮에 벌어진 현직국왕의 납치극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원나라는 충혜왕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사신 여섯 명을 고려로 보내 충혜왕에게 '정동행성'으로 출영(出迎, 궁궐에서 나와 사신을 직접 맞아들이는 것)을 요구했다.


충혜왕은 처음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사신들 집요한 압박 끝에 마지못해 '정동행성'으로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 순간, 사신들은 갑자기 충혜왕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고 포박했다. 이를 막으려던 호위 무장 두 명은 사신들 칼에 맞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출영에 동행했던 고려신하들은 여섯 명 사신에게 맞서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충혜왕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말에 태워져 원나라로 끌려갔다. '대도'(오늘날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황제로부터 ‘왕정’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불리며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곧 유배형 선고도 받는다. 유배지는 대도에서 2만 리나 떨어진 '게양현', 오늘날 광둥성 '조주' 지방이었다. 그는 그곳으로 가는 도중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충혜왕 최후는 당시 고려가 처한 현실, 그리고 우리 역사 속 깊은 슬픔과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오늘날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도 당시 고려백성들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역사를 뼈아프게 기억한다. 그러나 고려가 충렬왕부터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원나라는 일본처럼 고려 왕조를 아예 없애지는 않았다. 대신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었다. 원에서 시집온 공주들은 원나라 황실권위를 등에 업고 국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어린 왕을 대신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그 결과 고려는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상실했고, 국왕 지위마저 원 황제 의중에 따라 좌우되었다.


충렬왕과 충선왕, 충숙왕과 충혜왕 모두 원 황제 명령에 의해 폐위와 복위를 반복한 인물들이다.


이중에서도 충혜왕 사건은 특히 충격적이다.


3. 백성들은 정말 환호했을까?


기록에는 충혜왕이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하고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의 납치와 몰락을 고려 백성들이 환호했다고 적혀 있다.


과연 사실일까?


아무리 나쁜 왕이었다 하더라도, 대낮에 외국사신이 자국 국왕을 폭행하고 납치하는 장면을 보고 고려백성들이 진심으로 환호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몽골에 맞서 수십 년간 항전했던 고려인들 투지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충혜왕 개인적 악행과는 별개로, 한 나라 군주를 외세가 마음대로 폭행하고 유배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원과 고려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충혜왕 개인 비극을 넘어 국가 전체 굴욕이자 우리 역사 속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다.


베네수엘라 국민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4. 비극의 이면


충혜왕 납치사건 배경에는 원황제 후궁에서 황후가 된 '기황후'의 개인적 감정이 작용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충혜왕이 사소한 다툼 끝에 기황후 다섯째 오빠 '기윤'의 집을 허물어버렸고, 이에 분노한 기황후가 직접 원 황제에게 개입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기황후에서는 두 사람이 애틋한 연인 관계로 묘사되었다.


한 사관은 충혜왕을 이렇게 평가했다.


“좋은 머리와 무예를 엉뚱한 데만 썼다. 안으로는 부왕에게 꾸지람 듣고, 위로는 천자에게 죄를 지었으니 객지에서 죽은 것도 자업자득이었다.”


이 기록에서 보듯 충혜왕은 분명 뛰어난 두뇌와 무예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그는 그 재능을 나라와 백성이 아닌 파멸로 향하는 길에 써버렸다.


그 결과 충혜왕은 우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시에 외세에 의해 납치되어 끌려간 비극적인 현직국왕으로 남게 되었다.


충혜왕 개인행태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아직 모른다.


(백제 의자왕과 고구려 보장왕은 나라가 멸망한 뒤 포로가 된 경우이므로,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 초롱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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