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7

남북국 시대 8ㅡ해동성국 발해, 국가품격과 주요 왕들 업적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7

ㅡ 남북국 시대 8 ㅡ

(해동성국 발해, 국가품격과 주요 왕들 업적)


발해는 단순히 고구려 뒤를 이은 계승국가에 머무르지 않았다. 건국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약 230년 동안 발해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독자적 외교와 군사전략을 펼치며 자주적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 결과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 (海東盛國)’ 이라 불릴 만큼 강대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특히 이 칭호는 발해가 스스로 내세운 수식이 아니라, 당나라와 일본 등 외부 세계가 발해 국력을 인정하며 붙인 명칭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해동’이란 중국을 기준으로 바다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을 뜻하며, ‘성국’은 정치·군사·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강성한 국가를 의미한다.


즉, 해동성국이라는 표현은 발해가 중국 동쪽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영한 국가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발해는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고, 전성기 에는 당나라를 선제공격할 정도로 군사적 역량을 갖춘 국가였다.


이러한 국력은 단순한 군사력에 그치지 않고, 도시와 문화 발전으로도 이어졌다. 발해 수도 '상경'(上京)은 정연한 방리제 도시구조와 궁성·사찰 배치를 갖추어 ‘동방의 작은 장안’이라 불릴 만큼 높은 도시계획 수준과 문화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아울러 발해는 당나라, 일본, 신라, 거란 등 주변국가들과 활발한 외교 교역을 전개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정치·군사·경제·문화전반 발전은 발해가 고구려 단순한 후계국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한 축을 담당한 독자적 강국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발해 주요 왕과 업적을 살펴보자.


1. 고왕 대조영 (698~719) ― 건국과 독립의 기초


- 698년 '동모산'(東牟山)에서 발해 건국

- 고구려 유민 + 말갈 세력을 통합한 다민족 국가

- 왕권중심 정치체제 확립 시작


1) 외교


- 당과 전투 후 화친 → 실질적 독립 인정 유도

- 당으로부터 ‘발해군왕’ 책봉 → 국제질서 속 국가인정받음


2) 군사


- 천문령 전투 승리로 당의 추격 차단 국경 방어선 구축


3) 의의


- 발해의 정통성 = 고구려 계승 국가

- 생존중심 외교·군사전략 발휘


2. 무왕 대무예 (719~737) ― 공격적 팽창과 자주성 강화


1) 군


- 당나라 등주(登州) 선제공격 → 발해의 군사력 과시

- 말갈·거란 세력에 대한 적극적 공세


2) 외


- 당과 관계악화 → 강경노선

- 일본과는 국교 수립

- 당과 일본에 사신 파견, 해상 교역 활성화

- 일본기록에 발해 국력 상세히 등장


3) 경제·교역


- 동해 해상 교역로 개척

- 모피·말·철 생산력 확대


4) 의의


- 발해가 방어국가 → 팽창국가로 전환

-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존재감 급상승


3. 문왕 대흠무 (737~793) ― 제도·문화의 전성기 기반


1) 정치·행


- 3성 6부제 정비 (당 제도 수용)

- 지방 통치체계 강화

- 왕권 안정 + 관료제 완성


2) 외교


- 당과 우호관계 회복

- 빈번한 사신 교환 → 국제적 위상 상승

- 일본과도 외교 지속


3) 문화


- 유교 정치 이념 강화

- 불교 장려 → 사찰·불상 조성

- 한자·율령·의례 확립

- 수도 상경 용천부 건설

(동방의 작은 장안)


4) 의의


- 발해를 제도적 완성 국가로 격상

- 후대 전성기의 토대 마련


4. 성왕 대화여 (793~794) ― 과도기적 계승


1) 특


- 재위 기간 매우 짧음

-문왕의 정책유지에 집중


2) 의의


-혼란 없이 왕위계승 성공

-안정적 정권 이양


5. 강왕 대숭린 (794~809) ― 안정과 방어의 시기


1) 정


- 내부반란 억제

- 관료체제 유지


2) 군사


- 북방·서방 국경방어 강화

- 거란·말갈세력 견제


3) 의의


- 팽창보다는 현상 유지 + 내실 다지기


6. 정왕 대원유 (809~812) ― 조용한 안정기


1) 특징


- 기록은 적으나 큰 혼란 없음

- 중앙 통치력 유지


2) 의의


- 발해 체제의 안정성 입증


7. 의왕 (812~817) ― 중앙집권 강화


1) 정치


- 귀족세력 견제

- 왕권 강화 시도


2) 의의


-선왕시기 대확장 전 준비 단계


8. 선왕 대인수 (818~830) ― 발해 최대 전성기


1) 영토


- 발해 최대영토

- 만주 대부분 + 연해주 일부 + 한반도 북부


2) 행정


- 5경 15부 62주 체제 완성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

- 지방 통치효율 극대화


3) 외교


- 당·일본·신라·아라비아 상인과 교역

- 국제 무역국가로 성장


4) 국력


- 인구·경제·군사 모두 정점

- ‘해동성국’ 칭호 확립


5) 의의


- 발해 역사상 절대적 최전성기


9. 이왕 대인석 (894~906) ― 쇠퇴와 붕괴의 시작


1) 내부 문제


- 왕위 다툼

- 귀족세력 분열

- 지방 통제력 약화


2) 외부 압박


- 거란(요)의 급성장

- 국경침탈 심화


3) 결과


- 국력 급속히 약화

- 이후 926년 발해 멸망으로 이어짐


발해 전체흐름을 보자면 대조영(건국) → 대무예(팽창) → 대흠무(제도 완성) → 대인수 (최전성기) → 내부분열과 거란 압박으로 쇠퇴하다 멸망했다.


발해 멸망으로 우리 한민족은 만주 벌판을 잃어버리고 현재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어서 발해멸망과 그 원인에 관해서 정리하겠습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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