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7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7
ㅡ 혁명의 배신, 그리고 이란사태와 한국역사 속 기시감 ㅡ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한국언론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한다.
<히잡시위, 반미구호, 핵개발, 중동분쟁>
그러나 이 틀로만 이란을 보면, 지금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현재 이란 위기는 단순한 정권 불안이나 반정부 시위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가 스스로 역사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충돌에 가깝다.
이 점에서 이란은 한국 국민에게 결코 낯선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이 자신을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단일민족 국가”로 인식하듯, 이란인들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한다.
오늘날 흔히 ‘이슬람 신정국가’로 요약되는 이란도 원래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이란 뿌리는 이슬람 이전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에 있다. 기원전 2500년 이상 이어진 페르시아 제국은 법과 행정, 다민족 통치, 종교적 관용을 중시한 세속적 제국이었다.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페르시아 제국 창시자) 통치 원칙은 오늘날 인권개념 원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은 오늘날 이란인들 자의식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7세기 이후 페르시아에 이슬람이 들어왔지만, 이란은 언어와 문화, 행정전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페르시아어는 살아남았고, 이슬람 세계 학문과 행정을 이끌었다.
그래서 이란인들은 “이슬람은 받아들였지만, 아랍이 된 적은 없다”라고 말한다.
20세기 초 이란은 중동에서 드물게 입헌주의와 근대국가를 실험한 나라였다.
‘팔레비’ 왕조는 권위주의적이었고 정치적 자유는 제한적이었지만, 세속국가, 교육확대, 여성사회진출, 산업화, 종교와 정치분리 등 현대적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테헤란은 당시 ‘중동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불렸다.
문제는 자유 결핍이었다.
'팔레비' 왕조의 정치적 억압, 사회적 불평등, 미국과 밀착은 반발을 키웠고, 이는 1979년 혁명으로 폭발했다.
당시 이란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자유와 주권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가장 조직적 이었던 종교세력, ‘호메이니’ 손에 들어갔다.
당시 호메이니는 단순한 혁명 지도자를 넘어, 세계적인 혁명가이자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1980년대, 호메이니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지도자 상징처럼 회자되었다.
1985년을 지나면서 우리나라도 민주화 운동은 전국 곳곳에서 활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광주에서는 ‘전라도 호메이니’라는 말이 돌았다.
'김대중선생님'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였는데, 사람들은 그 귀환을 맞아 호메이니와 비교하며 그렇게 불렀다.
내 기억에도 생생하다.
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열기와 기대 속에서, 당시 호메이니 이름은 단순한 외국 혁명가를 넘어 민주화 열망 상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재 이란은 어떤 상황 인가?
돌이켜보면, 김대중을 호메이니와 비교해 부른 것은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호메이니는 시아파 이슬람 전통에서도 이례적 주장을 내세웠다.
“이슬람 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란 혁명기 혼란 속에서 이 사상은 헌법에 반영되었고, 이란은 종교가 국가 위에 군림하는 '신정국가체제'로 고착되었다.
이 시점부터 이란은 자기 역사에서 가장 낯선 국가형태에 들어섰다. 왕정도 아니고, 민주 공화국도 아닌, 선출되지 않은 종교권력이 국가를 최종 결정하는 신정국가체제였다.
대통령과 의회는 존재하지만, 실질적 권력은 종교 최고지도자와 종교기관, 혁명수비대에 집중돼 있다. 선거는 제한적이며, 대통령은 권한보다 책임만 진다.
히잡강제, 표현자유 억압, 여성과 청년의 삶에 대한 종교적 개입은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2022년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이후 이란 사회인식은 점차 분명해졌다. 점진적 개혁만 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란 거리에서 들려오는 “왕정을 복구하라”는 구호는 겉으로 보기엔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는 절대군주제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종교국가 이전 존재했던 세속적 체제를 상징적으로 호출하는 언어다.
오늘날 왕정지지자들은 입헌군주제, 세속헌법, 종교와 국가분리를 언급한다.
즉 “1979년 이전으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1979년 혁명의 배신, 바로잡자”는 요구다. 다만 이 요구가 사회 전체를 대표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이란에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한다.
이런 시각은 한국 현대사와도 겹친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 전두환 체제 아래에서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체제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일정부분 자유가 확대되었지만 권위주의적 구조는 상당부분 유지됐다.
혁명 기대가 왜곡되고 배신되어 권위주의적 체제에 흡수되는 상황은 이란과 한국 모두에서 나타난 것이다.
최근 한국사례도 시사적이다. 2024년 윤석열 12.3 비상계엄 선포는 ‘혁명의 배신’과 같은 권력 논리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다행히 체제를 극복했다.
이란은 아직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결국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정권위기가 아니다. 이란사회는 더 이상 신정체제를 스스로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젊은세대에게 ‘이슬람공화국’은 전통이 아니라 강요된 현재이며, 그들의 정체성은 호메이니보다 페르시아 문명과 더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이란상황은
<정권문제가 아니라, 자기 역사를 되찾으려는 문명적 자기회복 문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란 이야기만 아니다.
한국역사 속 경험과 교차하면서, 우리는 권력과 역사, 혁명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 초롱박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