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과 조선왕실 위생과 문화 비교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6
ㅡ 거리에는 오물이 흐르고, 왕들은 씻지 않았다 ㅡ
(중세유럽과 조선왕실 위생과 문화 비교)
오늘은 특별하고 다소 지저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역사 속 위생문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특히 중세유럽 왕실과 귀족들은 현대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위생상태가 열악했다.
이를 조선시대와 비교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엘리자베스 1세와 루이 14세: 화려함 속 더러운 현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명군 중 한 명이지만, 개인 위생상태는 충격적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단 것을 좋아해 설탕을 과도하게 섭취해 치아가 손상되었고, 치과 치료를 거의 받지 않아 대부분 치아가 썩었다. 그녀 입에서 나는 구취는 주변 사람들이 참기 힘들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또한 천연두로 생긴 얼굴 곰보자국과 탈모를 가리기 위해 얼굴은 납 화장으로 하얗게 만들었고 또 여러 가지 무거운 가발을 썼다.
그녀는 지나친 납 화장과 가발착용으로 인해 얼굴 피부와 두피가 보기 흉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일부기록에 따르면 시녀들이 그녀 두피에서 구더기를 핀셋으로 제거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만 이러한 내용은 공식기록보다는 야사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이었던 사실을 못마땅해했던 일부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루이 14세 또한 개인위생에 무관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루이 14세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전에는 수천 명이 살았지만,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도나 커튼 뒤에서 볼일을 봤다. 궁전 안은 상시 ‘강력한 향수’(?)가 넘쳤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아름다운 베르사유 정원도 사실 당시에는 거대한 똥밭이었다.
심지어 지금도 베르사유 궁전 에는 화장실이 거의 없어, 관광객들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루이 14세는 평생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두 번밖에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루이 14세 체취 악취와 구취 문제로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 힘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두 사람 모두 씻지 않은 것은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미아즈마 이론'을 믿어 병은 ‘썩은 공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땀구멍을 여는 목욕은 오히려 병균을 잘 옮길 수 있다고 여겨, 상류층은 손과 얼굴만 닦고 향수와 허브로 냄새를 가렸다. 목욕하는 것을 죄악처럼 생각했다.
2. 중세유럽 도시와 생활환경
당시 유럽도시는 현대적 하수시설 이 거의 없었다. 집에 화장실도 대부분 없었다. 시민들은 요강을 사용했고, 내용물을 창밖으로 버리는 일이 흔했다. 건물은 고층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위층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피하려면 귀족부인들에게 양산은 필수였다.
거리에 공중화장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았다. 요강을 들고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도 있었다. 거리마다 배설물과 음식물 찌꺼기, 동물 부산물이 뒤섞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적거리는 진흙처럼 발에 달라붙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숨을 막았고, 쥐들이 여기저기서 날뛰며 음식물과 부산물을 쪼아 먹었다. 그 혼란 속에서 질병은 쉼 없이 퍼져 나갔다.
이런 거리를 지나야 하는 귀족들에게 굽 높은 신발이 필요했다.
현대에 들어와서야 양산은 햇빛가리개로 굽 높은 신발은 하이힐 패션으로 바뀌었다.
향수를 사용한 것도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악취를 견디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다.
머리를 감지 않는 습관 때문에 가발을 착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발 속은 이와 벼룩들 최고급 호텔이었다.
당시 이와 벼룩을 감추기 위해 옷마저 이나 벼룩이 잘 안 보이는 색상이 유행했다
지금은 패션으로 보는 가발, 향수, 하이힐, 양산은 모두 당시 환경적 필요와 생존전략 이었다.
3. 조선왕실과의 대비
조선왕실에서는 청결이 정치와 도덕과 직결되었다. 왕이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하면 즉각적으로 신하들 상소가 올라갔다.
궁궐 내 변소는 체계적으로 관리되었고, 백성들 분뇨는 농업용 자원으로 재활용됐다.
정기적인 목욕과 나름 구강위생이 생활화 되어 있었으며, 온돌 구조 덕분에 겨울에도 물 사용이 가능했다.
향은 주로 의례적·약용적 의미였고, 악취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이처럼 중세유럽과 조선왕실 차이는 명확했다.
유럽에서는 향수, 가발, 양산, 하이힐 등이 생존전략이었다면, 조선에서는 청결과 위생이 생활기본이었다.
조선에서 청결이 강조된 이유는 유교적 도덕관과 체계적 관리, 그리고 물리적 환경(온돌, 상하수 관리)과 연결되어 있다.
4. 왕실과 귀족들 기생충 문제
중세유럽 귀족과 왕도 이·벼룩, 진드기 등 기생충 문제에서 골머리를 썪혔다. 전담 하인이 빗과 핀셋으로 관리했지만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왕실에서도 벌레와 기생충은 존재했지만, 청결과 관리가 생활 일부로 체계화되어 있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5. 개인위생과 성생활
중세유럽 사람들은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성관계 자체를 피하지는 않았다. 체취와 악취를 일부 상류층은 향수, 허브, 화장으로 가렸다. 그러나 냄새를 완전히 없앨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기록에는 성관계 후 “불쾌했다”는 사례가 남아 있다.
씻지 않는 생활과 도시환경, 기생충 문제 때문에 성병과 피부 감염이 흔했고, 루이 14세의 경우 성병과 관련된 합병증이 건강 문제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실에서는 정기적 목욕과 위생관리 덕분에 상대적으로 청결하게 성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6. 열악한 위생과 사회적 결과
중세유럽 위생문제는 전염병과 직결되었다. 흑사병은 유럽인구 4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거리와 생활환경은 질병 확산 온상 이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 위생상태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대의학과 세계관, 환경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7.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엘리자베스 1세와 루이 14세 사례는 단순히 “씻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상식과 과학적 오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했는지를 보여준다.
향수, 하이힐, 가발 같은 문화요소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당시 환경과 문화를 반영한 생존전략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합리적이었고, 당대 환경과 지식체계에서는 나름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한다.
구한말 조선을 찾은 유럽인들은 조선인들 더러운 생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재미있는 건,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그들 유럽이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불결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는 본다.
시대마다 잘못된 과학과 오도된 상식, 편견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류를 억압해 왔는지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 때문에 희생당했는지를...
중세유럽, 사람들의 오도된 고정관념이 흑사병 불러왔고 당시 유럽 인구 4분의 1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전히 본다.
오늘날에도 잘못된 정보와 상식, 가짜뉴스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움켜잡고 있다는 것을...
미래 후세가 지금 우리를 본다면,
오늘날 전쟁과 핵개발 등도
중세사람들이 목욕을 두려워한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재 인류의 한계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단순히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역사를 우리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해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내게 다시 태어날 시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왕이나 귀족으로 태어난다 해도 나는 중세유럽으로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늘 깨끗하게 지켜 주시느라 애써 주시는 환경미화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