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8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8
ㅡ '태백산맥' 영화를 30년 만에 다시 보고 ㅡ
어제, 1994년에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을 30년 만에 다시 보았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1989년, 나는 광주교도소에서 근무하던 29살의 신입 교도관이었다. 교도관 직무는 혼자 근무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야근시간은 홀로 하루 밤을 지내야 했다. 그런 시간을 견디기 위해 당시 나에게 책은 큰 위안이 되었다.
어느 날, 한 무기수가 나에게 책을 하나 권했다. 그가 주었던 책은 <태백산맥>이었다.
그 무기수는 정말 선하게 생겼었다. 내가 처음 그가 살인죄로 무기수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나와 나이도 같았고,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살인범 모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사연을 말했다. 그저 한 순간의 분노였다. 평소 아버지 폭력에 시달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신과 가족들을 심하게 때리자 참지 못하고 낫을 휘두른 결과 말리러 왔던 옆집 이장이 죽고 아버지는 크게 다쳤다고 했다.
그는 늘 이장 아저씨에게 죄책감 느끼며 살았다. 그가 재판을 받을 당시, 바로 '광주항쟁'이 끝난 직후였고, 그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며 그는 상당히 억울해했다. 항소심에서 무기로 감형되어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내게 태백산맥을 권했다.
그 책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태백산맥이라는 책이 있는 줄도 몰랐고, '조정래'라는 작가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나는 당시 29살, 초중고를 오롯이 유신시절을 겪은 세대였고, 대학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관심은 있었지만 여전히 유신시대 반공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나에게 '빨치산'은 그저 괴물 같은 무서운 빨갱이들이었을 뿐이었다. 또 내 아버지 둘째 형님이 6.25 당시 빨치산 습격으로 가족이 몰살당한 아픈 가족사도 있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나는 그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책은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책을 한참 읽고 있던 당시, 나는 '검취'(재소자 검찰조사)라는 일을 나가게 되었다. 그날 하필, 내 대학동기 중 한 명이 운동권 활동으로 잡혀 있었는데 검취를 나가게 되었다.
나는 79학번이지만 85학번으로 예비역으로 다시 대학에 입학했고, 내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대여섯 살 어린 친구들이었다. 다른 교도관이 그 동생을 묶는 것이 보기 싫어 나는 의도적으로 그 동생을 맡았다.
그런데 검사실에 가보니, 또 하필 나와 인연이 있는 검사가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검사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그 검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학시절, 담양에서 야학을 함께 했던 선배누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또 고향선배로 검사는 지역에서 누구에 거나 유명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참 야릇한 우연이었다. 같은 세대로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조사하는 검사, 한 사람은 조사받는 재소자, 나는 그를 감시하는 교도관으로서 태백산맥 내용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검사실에서 나는 태백산맥을 읽고 있었다. 근무 중에 책을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지만, 신입이라 잘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책을 펼쳐 들었다. 나 혼자만 잘 아는 고향 선배 검사가 지나가다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검사실에서 불온한 책인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니, 간이 배 밖에 나온 교도관이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인가?”
나는 당황했지만, 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계속 읽어도 되지만, 너무 책 내용에 빠지면 안 돼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검사가 지나가고 나는 책을 덮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검사는 공안 검사였기 때문에 태백산맥을 분명히 읽어봤을 것이다. 그는 책 내용이 생각보다 이념적으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검사실에서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보고도 관대하게 웃으며 넘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때 대학 동기 동생은 나와 함께 도의원 생활을 8년이나 했고, 2026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에서 가장 큰 도시 시장에 출마하여 여론조사 선두권에 올라 선전하고 있다. 그 동생의 투쟁과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교도소에서 무기수가 전해준 태백산맥은 내게 엄청난 이념적 충격을 주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빨치산'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졌다. 빨치산은 내가 그때까지 간직해 온 괴물 같은 무서운 빨갱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겪었던 시대적 상황과 내면적인 갈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4년, 내가 좋아하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태백산맥 영화는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책을 너무나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었기에, 영화는 내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열 권짜리 대하소설을 3시간도 안 되는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책의 방대한 서사를 담아내지 못했다. 책에서 전달되었던 역사적 깊이와 이념적 갈등, 인간적 고뇌 등은 영화에서는 그저 표면적으로만 드러났다고 느꼈다.
그래도 어제 영화를 다시 보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염상진'처럼, 올바른 소신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나도 염상진처럼 좌익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그 시대 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박헌영, 이현상, 염상진 등이 활동했던 남로당과 남부군 빨치산들은 그들은 자신이 믿었던 이념과 소신대로 강철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남과 북에서 모두 철저히 버림받았다.
남쪽에서는 적으로 간주되었고, 북쪽에서는 김일성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숙청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의 개인적인 비극은 너무나 안타깝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며 험한 고생을 했고, 해방 후 인민을 위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목숨 걸고 투쟁했던 그들 삶은 결국 역사 속에서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영화 마지막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려는 '염상진'(김명곤)에게 대지주 아들로 회색분자로 비난을 받던 김범우 (안성기)가 말한다.
“형님은 실패했소.”
염상진은 그 말에 고뇌에 찬 얼굴로 대답한다.
“그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바로 그들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들의 소신은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결국 그들이 남긴 것은 역사 속에서 실패로 기록되고 만 것이다.
당시 공안검사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태백산맥 책을 보고 있는 나에게 관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영화에서 묘사된 그들의 비극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데에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태백산맥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염상진 마지막 말,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깊은 의미를 지금은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이 말은 실패자처럼 보이는 그들 마음속에서 어떤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었던 인민을 위한 일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달랐다.
그들이 하늘처럼 믿고 있던 인민들 역시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의심치 않았지만 인민들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을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이러한 아이러니한 비극적 상황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했다. 참 아쉽다.
우리는 그래도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정의로운 행동이라 믿고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이 현실 속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단순히 실패자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때로는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들 진정성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선 건국자 정도전처럼, 그가 남긴 발자취가 수 백 년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역사의 진실은 종종 바로 그 순간 에는 드러나지 않으며, 오랜 시간 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비극적 현대사를 대하소설로 담아낸 태백산맥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다시 영화로 제작되어 아카데미 상을 받는 것을 꿈꿔보지만, 불가능할 것 같다.
그 이유는 그런 상을 받기 위해서는 전라도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 없는 태백산맥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니까… ^^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