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인간, 그 운명이란 무엇일까? ㅡ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9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99


ㅡ 인간, 운명이란 무엇일까? ㅡ


오늘은 해골 아파지는 이야기를

한 번 해 보겠다.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를 우연히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 그 운명이란 무엇일까?"


'운명'이라는 말은 종종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처럼 쓰인다.


'어쩔 수 없어'


신의 계획, 별의 배열, 필연 같은 말들은 '운명'을 설명하는 대신 가린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 어떤 지역, 어떤 부모,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이 우연들이 겹쳐 지금의 ‘나’라는 형상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의지도 목적도 없다.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조건들의 총합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률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46억 년을 지내온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600만 년을 건너온 사피엔스 종으로 태어나, 80억 개 중 하나의 좌표로 내가 찍혔다. 게다가 수억 개 정자, 아니 수 조개가 넘을 가능성 중 단 하나가 내 존재의 문을 통과했을 것이다.


우리가 평생 날마다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한 확률 속의 결과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엄청난 확률은 잠시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의식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감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세상은 이 희귀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름보다 번호로 다뤄지고, 사람보다 기능으로 평가되며, 쓸모가 끝나면 또 다른 존재로 조용히 교체된다.


기적 같은 확률 속에 태어났다는 사실과 아무렇지 않게 소모된다는 현실 사이에는 어떤 연결도 없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긴다.

희귀하면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 기적 같은 확률 속에 태어났으니 특별할 거라는 믿음.


그러나 이 희귀함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불과하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우주는 모든 것을 단 한 번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 지도 않는다.


우리를 하찮게 만드는 것은 세상만이 아니다. 더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가 그 시선을 우리 스스로 내면화했을 때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하찮다.”


이 문장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순간, 존재는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판결이 된다.


최근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반복해서 떠오른 것도 아마 그 인식 때문일 것이다.


반딧불은 밤을 이기지 못한다.

세상을 밝히지도 않는다.

어둠 속에서 잠깐 빛을 낼 뿐이다.


그 빛은 작고, 불안정하며, 곧 꺼진다.

그 점에서 인간과 닮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오래된 진부한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뀐다.


"아무도 삶의 의미를 보장하지 않는 세계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설명 없이 이 세계에 던져졌고, 그 의미를 찾도록 강요받았으며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지치고 만다. 그저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우리 운명을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받아들이기엔 우리는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깊이 생각한다.


아마 우리 '운명'이란 미리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끝없이 수정되는 문장일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초안 위에 계속 덧쓰는 기록.


그 기록이 우리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간다.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세상을 밝히지 못해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꺼뜨리지 않기 위해.


반딧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잠깐 켜지는 일.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습관일지도 모른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미 없음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해서....


ㅡ 초롱박철홍 ㅡ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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